다시 시작하며
Paragraph 1.1.1
여러분이 불교에 대해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이 아실 수 있습니다. 책도 더 많이 보셨을 수 있고요.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책을 안 봅니다. 다만 부처님 말씀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 근본경전을 조금씩 볼 뿐입니다. 조금 읽고 많이 곱씹는 편입니다. 문장을 하나 읽으면 그것을 화두 삼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어떤 경우는 몇 년을 두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니 많이 읽을 수도 없습니다. 많이 읽으면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해서 머리가 아프고 마음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읽되 많이 생각하고,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그냥 생각마저 놓아버립니다. 그러고는 앉아 정진하면서 은연히 그 문제의식을 가꾼다 할까, 끌어안고 키운다 할까, 또는 찌거나 삶고 있다 할까 그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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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2
그렇게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저는 부처님 가르침이 학자들이 설명하듯이 그렇게 복잡다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학자도 아니었을 뿐더러 학자를 양산하려고 45년간 법문을 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그렇게 복잡하게 헤아리는 노력은 애당초 불교와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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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3
여러분은 한국이라는 불교 전통이 유구한 사회에 태어났기 때문에, 불교에 관해서 생래적으로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에 태어날 때는 금생뿐 아니라 전생부터 한국과 인연이 많았겠지요. 어떤 때는 유학자가 되어 탄압하는 입장에서 불교를 대했을 수도 있고, 과거 어느 생에서는 불교인이 되어서 적극 옹호하는 입장에서 불교를 접하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불교를 접해온 인연이 있고, 금생에도 불교의 영향이 큰 사회에서 살아왔기에 여러분의 불교적 소양은 대단히 풍부할 것입니다. 그런데 특히 처사님들이 불교를 접하는 길은 대개 몇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우선 불교를 접하면서부터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다 보니 불교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더 보태드릴 말이 없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는 자기 나름대로 정진만 열심히 합니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한 소식을 했다’며 찾아와서는, 그 한 소식한 양을 재보려고—거량擧量이라고 하지요— 덤벼듭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 중에는 자신이 부처의 경지를 이미 넘어섰다고 믿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 눈에 저는 그저 부처님 졸개로 보이겠지요. 중이란 자가 겨우 부처 졸개인 처지에서 뭘 안다고? 이럴 때 저는 아무 말도 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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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4
이럴 정도로 불교적인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는 게 한국사회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떤 형태로든 불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에 관한 지식을 하나 더 보태드리기보다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료의 방향을 약간 정리한다든가, 지나치게 다양한 지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조금 교통정리를 하는 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승복 하나 걸쳤다는 것 의지해서 말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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