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길 따라 멈추기
Paragraph 1.11.1
바른 길 따라 멈추기
팔정도八正道는 바른 길입니다. 식을 멈추려고 해도 바른 길에 따라 멈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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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 2
우리는 식의 놀음 때문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내 것이냐 남의 것이냐’, ‘우리 편이냐 남의 편이냐’, ‘이로우냐 해로우냐’, ‘크냐 작으냐’, ‘밝으냐 어두우냐’로 쪼개고, 그 쪼개진 정보로서 인식하는 놀음을 숙명적으로 면치 못합니다. 그 결과 인식을 지혜의 차원으로 정화시키지 못하고 지식에서 맴돌고 맙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탐·진·치 삼독심을 일으키는 숙명성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식과 상이 만드는 이 숙명성, 이제는 이것을 멈춰야겠는데, 그것도 올바르게 멈춰야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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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3
보통의 경우 식은 모든 인식을 지배하고 느낌도 지배하지요. 지금은 식이 100퍼센트겠지만 꾸준히 수행을 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식이 그 전제적 횡포를 발휘하지 못하고 약해져요. 예컨대 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타自他가 둘이지요. 절대적으로 둘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식이 약해지면 자타의 차이가 좁혀져서 마침내 식이 함몰하는 경계에 이르면 자타가 둘이 아니고 그대로 일체가 됩니다. 나도 없고 상대도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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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4
그 경계를 차서적인 순리에 따라 바른 선정에서 경험하면 지혜 향상의 계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어떤 순간적 경험에 의해 식이 깜빡할 때도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식이 깜박하고, 다른 요소가 인식행위를 주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도 자타의 분별이 약해져서 사이비 깨침을 얻는 수가 있습니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느냐? 마음과 식은 하나면서 둘인데 서로 기능이 다릅니다. 마음이 평온하냐 아니냐와 자타가 하나 되고 둘이 되고 하는 것 사이에는 꼭 필연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온하지 않아도 순간적으로 식이 약해지는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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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5
이와는 달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선정입니다. 팔정도의 바른 집중[正定]이지요. 체계적으로 수행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 때문에 식이 약해집니다. 우뻬카upekkhā(平靜)가 확립되고 사띠sati(正念)가 바로 서서, 우뻬카(平靜)-사띠(正念)가 주욱 상승하는 단계가 되면 식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그때에 올바른 선정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하나니 둘이니 하는 수의 여지가 사라지는 경계에서 하나임을 느낄 때, 그것은 올바른 향상의 단계이고, 여기서 식의 기능은 유보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이 유보될수록 지혜가 향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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