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
Paragraph 1.9.1
지식과 지혜
우리는 지금 식과 상의 놀음 때문에 지식 차원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앎을 어떻게 하면 지혜의 차원으로 높일까를 강구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지식과 지혜의 관계에 대해서 바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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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2
불교는 지혜의 종교입니다. 자비행을 강조하더라도 지혜가 중심이 되어 제자리를 잡아야 올바른 자비행도 할 수 있습니다. 지혜 없는 자비는 참 난처한 겁니다. 지혜가 온전하게 성숙해야 하는데, 이 지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큰 틀에서 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불교가 해탈·열반을 지향하고 법을 중심으로 한다면, 지혜란 것은 ‘법을 아는 것’이라고 감 잡을 수 있습니다. 지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해탈·열반으로 인도하는 법을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는 물리화학적 지식이나 정치경제학적 지식처럼 자연과 사회를 알고 이용하는 앎이 있지만, 불교의 지혜는 해탈·열반과 관계를 맺고서 해탈·열반으로 이끄는 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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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3
보통 서양에서는 육체와 정신, 영혼과 육신의 이분법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런 이분법도 식識의 작용으로 생각하기에 일단 경계합니다. 십이연기에서는 식識과 명名과 색色의 세 가지로 설명하고, 인간을 구성하는 것도 오취온五取蘊의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몸과 마음’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유는 그 자체가 대강 맞으니까 그동안 인류에게 통용되어 왔지만 실지로는 애매모호하고 지혜를 개발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과 육으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적어도 식과 명과 색 정도로는 구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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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4
불교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다양한 요소의 인과 과정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 한 요소인 식도 다양한 지혜의 한 단계로 설명합니다.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의 기본이지요. 그 앎도 여러 종류와 단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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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5
식은 지혜 중에서도 가장 하열下劣한 지혜라 하겠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하열한 식識과 그 파생인 명名이 수행하는 정신적 기능입니다. 사유라고 부르는 것도 생각의 일종이지요. 철학적 사유나 과학적 지식도 생각이 체계화된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유보다 더 넓고 높은 세계가 실제로 있고, 그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 불교수행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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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6
‘산냐[想]’는 명색의 명 단계1에 해당합니다. 산냐는 우리가 듣고 배워서 아는 지식입니다. 어떤 문화 전통에서 태어나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문화적 학습을 함으로써 어떤 지배적 통념들이 뇌리를 조직하고 지배하는 것, 이것이 산냐입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한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사회의 교육에 따라 내가 입수한 통념들이 자기들 습관대로, 자기들 논리대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면 왜 내 생각이 자꾸 변하겠어요? 왜 어제 생각이 오늘 바뀌겠어요?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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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7
생각은 인지 능력의 한 차원이고 그것도 낮은 차원이에요. 이 낮은 차원의 지적 기능을 뒷받침하는 일차적인 것이 산냐이고, 이보다 더 크고 더 근원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 식입니다. 산냐가 공동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상식 같은 것들이라면, 식은 자아의식, ‘나’의 의식과 통하는 잠재적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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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8
이런 낮은 인식 수준들이 있는 반면, 반야paññā도 있습니다. 반야는 ‘지혜’, ‘혜’라고 번역합니다. 반야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자아나 나를 개입시키지 않아서 자기중심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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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9
반야도 여러 수준이 있습니다. 우리가 명상과 자기 성숙을 이루어가면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더 나아가 ‘아빈냐abhiññā’라고 하는 보통보다 놀라운 지혜의 세계가 열립니다. 보통은 ‘신통력’이라고 번역하지요. 아빈냐의 세계에서 더 나아가면 ‘빠린냐pariññā’라는 세계가 있어요. 이른바 ‘확철廓徹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마침내 진리를 보는 ‘안냐aññā’의 경계가 있습니다. 안냐에 이르면 마침내는 관념이 아닌 진리를 그대로 아는 단계에 도달합니다. 이런 인식 수준은 식과 상의 흐름인 생각과는 거리가 아주 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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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10
이처럼 지혜는 그 수준이 다양합니다. 곤충의 지혜, 하루살이의 지혜로부터 인간의 지혜, 그리고 천상의 지혜를 넘어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만큼 식도 다양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식이 지혜와 반대인 것만은 아닙니다. 식은 지혜의 일종입니다. 식에도 지혜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식이라는 말을 쓸 때에는 주로 어떤 범주와 영역 안에서의 알음알이 놀음을 말합니다. 식과 지혜는 연속성을 갖지만 그 속에서도 식이 지배하고 있는 어떤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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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11
이렇게 보면 식은 가장 낮은 지혜 종자라 하겠습니다. 식은 윈냐나로서 ‘쪼개고 분리하는 앎’이지만, 윈냐나도 냐나ñāṇa인 한, 앎의 한 단계 또는 한 수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도 지혜의 권속입니다. 식과 혜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통하는 것이므로,2 우리는 식으로부터 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지식을 멈추고 지혜로 나아가는 불교적 접근의 독특한 성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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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12
어떤 제자가 부처님께 ‘혜와 식이 어떻게 다릅니까?’ 하고 여쭈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식과 혜는 같다. ’고 하십니다. 지식과 지혜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뭐냐? 식은 철저히 이해하여 될 수 있으면 줄여야 하고, 혜는 많이 닦아 가능한 한 늘려야 합니다.3 이 뜻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식은 늘면 늘수록 우리를 윤회에 단단히 끌어매는 기능을 하므로 줄여야 하고, 혜는 늘면 늘수록 우리를 윤회로부터 벗어나게 하니까 늘려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안다는 기능에서는 같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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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13
식은 만사를 나와 남, 나의 것과 남의 것으로 분별합니다. 그러니 식이 늘면 늘수록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아집이 강해지면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로부터의 해탈은커녕 윤회를 더 강화시키겠지요. 그래서 식을 멸하는 길이 해탈을 성취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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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9.14
식은 세계를 구성하면서 우리를 윤회에 붙들어 매는 주범입니다. 그런데 그 형체를 잡을 수도 파악할 수도 없기에 식을 없애고 싶은데도 없앨 길이 없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해탈을 생각하면서도 잘못된 길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고맙게도 부처님은 팔정도와 연기법에서 식을 멸하고 혜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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