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을 넘어 지혜로
Paragraph 1.10.1
식을 넘어 지혜로
식을 유보하고 멈추는 길은 우선 십이연기에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십이연기는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문제를 멈추는 답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십이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아실 겁니다. 경에는 ‘십이연기의 순관은 사성제의 집성제요, 역관은 사성제의 멸성제다.’1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멸성제는 우리의 실천 목표이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 구체적인 길이 도성제로서 팔정도입니다. 따라서 십이연기는 문제의 제기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도 담고 있습니다. ‘행行이 없으려면 무명無明이 없어야 한다. ’ 이렇게 선행 조건을 없앰으로써 그 결과를 멈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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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2
십이연기의 역관은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즉 ‘무명이 없으면 행이 없고, 행이 없으면 식이 없다. ’ 이렇게 나가다가 ‘생이 없으면 노, 사가 없다. ’에 이릅니다. 뒤집어서 이야기하자면 ‘늙고 죽음이 없으려면 생이 없어야 한다. ’, ‘생이 없으려면 유가 없어야 하고, 유가 없으려면 취가 없어야 하고, 취가 없으려면 애가 없어야 하고, 애가 없으려면 수가 없어야 하고, 수가 없으려면 촉이 없어야 하고, 촉이 없으려면 육입이 없어야 하고, 육입이 없으려면 명색이 없어야 하고, 명색이 없으려면 식이 없어야 하고, 식이 없으려면 행이 없어야 하고, 행이 없으려면 무명이 없어야 한다. ’ 이렇게 선행 조건을 없앰으로써 그 결과를 멈추는 것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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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3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서 볼 때에는 십이연기의 역관에서 핵심은 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식을 없앤다면 알음알이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러면 생각도 안 해야 하는가? 일체의 사유 활동을 정지해야 하는가? 그건 백치상태가 아닌가? 그게 어째서 무명無明을 없애고 명明을 가져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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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4
식은 종적으로 짚어보면 십이연기에 속하지만, 딱 끊어서 횡적으로 파악하면 오온五蘊에 속합니다.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무더기, 색․수․상․행․식을 오온이라고 하지요. 온蘊은 쌓임, 축적됨이라는 뜻이니까, 존재는 이 다섯 무리가 같이 뭉쳐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다섯 무더기 각각은 독립 단위냐? 식도 한 단위가 아니라 식온識蘊입니다. 켜켜이 아주 두툼하고 다양하게 쌓인 것이 온입니다. 그러니까 식도 권속이 많아요. 본래 오온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형태는 오취온五取蘊이지요. 집착의 덩어리들로써 굳을 대로 굳어져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집착으로 굳어진 다섯 덩어리들의 인식작용으로써 어떻게 진리에 접근할 수 있겠어요? 전부 집착놀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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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5
그래서 식을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3 그런데 식을 버리면 앎이 전혀 없는 무지인가? 식을 버리면 컴컴한 무지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식을 넘어선 지혜 단계로 들어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식은 분명히 지혜의 권속이기 때문입니다. 식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둔탁하고 거칠고 조잡한 사바세계를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좀 더 미세하고 진리에 가까운 경지에 들어가면 식이 작동을 못 합니다. 미세한 세계에 들이대기에는 이 식이라는 인식 잣대가 너무 거칠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식을 버리라고 한 것이지, 아예 앎의 활동을 정지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식이 약화되면 잠재해 있던 지혜가 드러나 환해집니다. 결국 식을 없앤다는 것은 지혜를 향상시키는 것과 직결됩니다. 식에 의존하던 단계에서 지혜를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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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6
그런데 식을 어떻게 없애느냐?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부처님은 고苦가 없으려면 우선 생生이 없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생이 없어? 내가 이미 태어났는데 생을 없앨 수는 없지요. 지금 직접 실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다음번에 또 일어날 생의 인因은 없앨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생은 유有가 있기 때문에 생기니까, 유가 없으면 생이 없겠지요. 그런데 유도 지금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다음 유를 만들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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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7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유를 없애려면 취取를 없애야 된다. ” 이 점이 실천적으로 중요한 대목입니다. 집착이 없어야지요. 오취온이야말로 취의 극성한 형태인데 어떻게 없애는가? 우선 가닥을 잡아서 그 왕성한 불길을 좀 끄고 진정시켜라. 그렇다고 금방 다 없어지지는 않지만, 일단 성하게 타고 있는 그 불길을 좀 잡아라. 어떻게 잡는가? ‘계행을 하라. 살생하지 마라. ’ 생명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에너지 중에 어떤 에너지가 제일 강할까요? 이 세상의 집착과 집념 중에서 살겠다는 집념보다 더 강한 것이 있겠습니까. 미물까지도 살겠다는 집착은 굉장히 강하지요. 이것을 탁 끊는 게 살생입니다. 그렇게 강한 집착을 남으로부터 차단당했으니 그 반발과 저항이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그 반발과 저항을 무수하게 야기하고 되받고 앉아서 편안해지겠다고요? 이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사람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물일지언정 살겠다는 집착은 다 무섭게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그냥 끊어놓으면 되돌아오는 저주와 저항은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그걸 무수히 일으켜놓고 내가 어떻게 편하게 살겠습니까? 어떻게 수행을 하겠어요? 안 될 말이지요. 그러니 살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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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8
이런 식으로 부처님이 사실은 아주 현실적으로 말씀하신 겁니다.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남의 아내 건드리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그런 짓해서 무슨 평안이 있고 무슨 공부의 여건이 되겠어요? 살겠다는 것 다음으로 내 것 지키겠다는 집념이 강한데, 내 재산이든 내 배우자든 내 자식이든 지키겠다는 것인데, 그걸 교란시켜 짓밟아 저항을 불러일으켜 놓고 내가 편해지겠습니까?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있나요? 안 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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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0.9
그러니 먼저 내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를 좀 진정시켜서 강한 저항을 일으키는 집착의 불길이라도 우선 잡으라는 것입니다. 불길을 잡고 나서 좌복에 턱 앉으면 전생부터 쌓아온 내 개성적個性的 집착들과 대면하게 되겠지요. ‘존재하겠다는 집착에서부터 아만을 내세우겠다는 집착, 남에게 지지 않고 남을 지배하고 싶은 집착, 이런 집착들을 잡아나가라. ’ 이렇게 집착을 버리는 것을 순서 있게 설해놓은 것이 팔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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