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등불을 빌린다
Paragraph 7.6.1
팔정도를 요약하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알고 계십니다. 바른 마음챙김[正念]은 그중에 정定에 해당되지요. 그러면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그리고 바른 노력[正精進]의 일부인 계戒가 선행해야 하고, 다시 그 계를 비추어줄 불빛으로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의 혜慧가 더 선행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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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2
〈고요한소리〉에서 나온 《영원한 올챙이》에는 “바른 견해, 바른 사유가 혜는 혜인데, 최상의 혜는 아니고 가장 기초적인 혜다. 그렇지만 꼭 선행해야 하는 혜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계·정·혜 삼학 중에 ‘기초적인 혜가 제일 선행하고, 그다음 계가 이어진 후에야 온전한 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결국 팔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법을 법대로 받아들여 실천하려면, 혜-계-정의 순서로 닦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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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3
물론 여기서 혜는 우리가 깨달아 아는 혜가 아니라, 부처님으로부터 빌리는 혜입니다. 부처님이 법의 등을 밝혔으니까 우리는 그 법의 등불을 빌려서 쓰는 것이지요. 어둠 속에 있는 내가 굳이 등을 만들어서 밝히는 것은 아니지요. 부처님이 나오기 전에는 어디에도 등이 없었으니까, 어지럽게 혼란스러운 도깨비불만이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때는 빛을 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나오셔서 법의 등을 밝힌 이상 이제 우리는 그 등에 의지해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팔정도에서 혜, 즉 바른 견해[正見]와 바른 사유[正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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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4
팔정도의 혜는 우리가 깨달아서 밝은 지혜의 눈을 가지고 공부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처음 공부 단계에서 바른 견해, 정견正見과 바른 사유, 정사正思의 혜는 부처님 법등을 빌려서 내 앞을 비추어 길을 짐작하여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법등을 빌리기 위해서 우리가 경을 읽고, 〈고요한소리〉도 역경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법등의 빛을 빌려서 내 앞길을 환히 보면서 나아가기 위해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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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5
그러면 법등을 빌리는 수고는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조계종이 정에 치우치고 혜에 치우쳐 본격적인 수행 이야기를 성급하게 하다 보니까 ‘먼저 책을 덮어라’ 하는 말부터 접하게 되는 거예요. 법의 등을 빌려서 내 앞을 바라보기도 전에, 법등을 가리게 되는 공부부터 권유받고 있다 이 말입니다. 물론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선종이 탄생하던 시절의 환경 탓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그 시절 그곳과는 완전히 다르지요. 따라서 우리는 책을 덮을 것이 아니라 펼쳐야 되지요. 그래서 그 빌린 불 빛 따라 나아가서 마침내 어느 정도 진전이 이루어져 나의 빛이 나오기 시작할 때면 남으로부터 빌린 법등은 끄게 되겠지요.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 캄캄칠야에 내 앞이 어디인지, 내가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는 판에 부처님이 모처럼 법등을 훤히 비추어 주시는데 내 공부에 걸림이 된다고 그걸 가리고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처님 나오시나 마나지요. 부처님 나오시기 이전 시대로 스스로 자원해서 돌아가는 꼴밖에 안 된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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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6
우리가 바른 마음챙김, 정념이라는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부처님으로부터 바른 견해, 바른 사유를 반드시 빌려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권하신 것이니까, 그것은 빌리자는 말이에요. 사십오 년간 그렇게 열심히 법을 설하신 것도 그 때문이니까요. 우리가 그 설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부처님께 모든 걸 의존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 법의 등불을 빌리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직접 듣지 못하니 경을 통해서 듣는 것 아닙니까. 그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뭘 하며 어떻게 해야 이로운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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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7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고 ‘나’라는 존재가 그중에 어디에 처해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내가 지금 무얼 하자는 것인지, 무얼 마음먹었는지도 부처님 설법에 비추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견해, 바른 사유의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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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8
즉 바른 견해는 갖추고서 바른 마음챙김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마음챙김에 대한 바른 견해부터 세워야 합니다. 팔정도의 일환으로서, 계·정·혜 삼학을 닦는 공부로서 바른 마음챙김을 공부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이제 부처님 법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바른 정신 무장으로 임해야 하는데, 바로 그때 바른 견해만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바른 견해로 팔정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추고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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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7.6.9
지금 우리는 바른 마음챙김을 공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때 성급한 마음으로 덤비거나 ‘시간 나면 앉아보지’ 하는 정도로는 바른 마음챙김, 정념을 제대로 닦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제대로 닦지는 못한다 해도 닦는 인연이라도 맺어놓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시간 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처음부터 인식은 바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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