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경험하며 호흡한다
Paragraph 6.6.1
온몸을 경험하며 호흡한다
지금 우리는 그런 변화를 위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똑바로 앉으라는 것도 그런 자세가 의근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앉아서 호흡은 가장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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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2
자연스러운 것이 참 좋습니다. 억지로 하면 안 돼요. 정신 집중을 하려고 너무 애쓰면 상기병上氣病 같은 큰 병이 생길 수 있어요. 또한 성공한다 해도 무당이나 점쟁이가 되어버릴 수 있어요. 신들리기 딱 쉽습니다. 아주 위험해요. 각자 자기에게 편하게 호흡을 하면 됩니다. 천천히 걷는 것이 좋은 사람이 있고 조금 빨리 걷는 게 좋은 사람도 있듯이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게 호흡하면 됩니다. 올바른 자세를 확립하고 호흡은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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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3
남방 위빳사나 전통에서는 의식은 코끝 아니면 코끝을 흐르는 숨결이 닿는 윗입술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코끝에 의식을 집중하면 현대인들은 자칫자꾸 상기上氣되기 쉽습니다.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상기되어 열이 막 올라오고 머리가 빠개질듯이 아프지요. 이렇게 되면 앉기만 해도 습관적으로 상기 증상에 등에 시달리게 되어 공부가 힘들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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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4
그래서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 같은 분은 의식의 초점을 낮추는 것이 좋다고 해서 배꼽이나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라고 가르칩니다. 붓다고사 이래로 내려오는 남방의 가르침은 코끝에 의식을 집중하라는 거였지요. 의식을 어떻게 집중하느냐? 붓다고사는 이런 비유를 듭니다. ‘성문에 성문지기가 있다. 이 문지기가 시내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나가는 사람이 누군지 다 점검한다. 나가는 사람을 따라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사람 따라 시내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여기 딱 서 있다.’ 그렇듯이 우리 의식도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보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고 보면서 여기서 떠나지 말라. 이게 붓다고사 전통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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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5
부처님 경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코끝에서 멈춰 지켜보라’라고 한 남방 쪽 입장과는 다릅니다. 온몸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호흡이 길게 쑤욱 들어가면 의식도 따라 들어가면서 지켜봐야 할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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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6
그러니까 ‘온몸’이라는 말의 해석을 놓고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온몸이라는 것은 호흡의 온몸이다. 호흡의 처음, 중간, 끝 부분을 말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코끝에서 호흡이 처음 시작되는 부분, 중간 부분, 끝 부분을 계속 보면서 있어라. 이게 온몸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남방 전통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절대 어기면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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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7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염신경念身經〉을 비롯하여 〈염처경〉, 〈안반수의경〉 등을 보면 “온몸을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온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입니다. 이렇듯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수행법도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따를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어떤 쪽을 따를 것인가? 마하시 사야도를 따를 것인가? 붓다고사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 사리뿟다 시대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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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8
저는 근본불교를 취하는 입장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마하시 사야도의 책을 보고 붓다고사의 《청정도론》도 보았어요. 어떤 수행법을 따르느냐는 수행의 방법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 불교를 공부하느냐?’ 하는 문제까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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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9
정신 집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빨리 이루는 데에 역점을 둬버리면 결국은 숙달된 테크니션이 되는 것이지요. 정定 전문가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 전문가, 집중 전문가가 되려고 불교에 들어왔나요? 아니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수행하느냐는 ‘불교가 뭐냐, 해탈 · 열반이 뭐냐’ 하는 데까지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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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10
테크니션이 보는 해탈과 윤리 도덕자가 보는 해탈은 다르지 않겠어요? 인도에 가면 정 테크니션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이 어떤지는 문제가 많겠지요. 대개 테크니션들은 안목이 좁잖아요.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입니다. 정 전문가도 결국은 안목이 좁아지기 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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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6.11
과연 그게 해탈의 길일까요? 어떤 분들은 ‘해탈을 하면 넓어지니까 그때까지 좁혀야 한다’고 얘기하는데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넓은 문은 처음부터 넓고, 좁은 문은 처음부터 좁습니다. 부처님 법이 정말 넓은 문이라면 처음부터 넓게 잡고 들어가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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