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음은 중도
Paragraph 6.2.1
앉음은 중도
요새는 여러 곳에서 가부좌로 앉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앉는 방법이나 호흡하는 방법은 친숙하게 알고 있을 겁니다. 힌두교에서도 그렇고, 기공이나 요가학원에서도 그렇고, 서양 신비주의자도 다 이런 식으로 앉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앉는다고 해서 다 불교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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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2.2
그러면 불자로서 앉는다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가 앉아 정진한다 함은 힌두 요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건강 비법을 훈련하는 것도 아닙니다. ‘법法Dhamma을 알겠다’는 마음에서 앉아야 불교 수행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처님이 가르치신 수행의 길, 즉 팔정도八正道를 이해하고 앉을 때라야 비로소 불자로서의 앉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팔정도가 곧 중도中道입니다. 또한 그렇게 앉으면 그것도 중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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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2.3
마음공부하려면 앉는 것이 좋습니다. 앉아서 마음을 모으지요. 서 있을 때는 활동적이고, 누워 있을 때는 너무 정적이어서 곧 잠이 옵니다. 앉음은 서 있음도 아니요 누워 있음도 아닌 중도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취하는 자세는 서거나 눕거나 앉거나, 이 세 가지입니다. 그 중 ‘섬’도 아니요 ‘누움’도 아닌 ‘앉음’이 중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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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6.2.4
서 있을 때 성한 것은 활동성인데 그 대신에 부족한 것은 고요함이지요. 누워 있을 때는 고요함이 성한데 활동성이나 깨어 있음은 약합니다. 두 가지를 살리려면, 즉 깨어 있으면서 고요하려면 앉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앉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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