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四聖諦로 문제 바라보기
Paragraph 5.2.1
사성제四聖諦로 문제 바라보기
저는 명색이 참선을 한답시고 내내 산속 토굴에 앉아 지내는 사람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말도 생각도 잊고 살려고 노력하지요. 그렇게 지내다가 서울에 올라오면 우선 숨쉬기부터 겁이 납니다. 또 말을 잊고 살려고 노력하다가 한 시간씩이나 법문을 할 생각만 해도 미리 기가 죽어서 첫 말을 꺼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고요한 산중과 분잡한 서울은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대도시의 분잡한 생활이 일상화되어 그 극적인 대조에서 오는 충격적인 느낌을 경험하기 어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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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2
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볼 때도 호흡을 한 번, 두 번, 세 번 가다듬고 나서야 비로소 눈길을 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실린 내용들은 무섭다 못해 충격적입니다. 늘 접하는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산중에 있다 나온 사람에게는 좀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모골이 송연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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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3
이러한 상황을 접하면 으레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여러분은 전혀 의심할 겨를도 없이 이런 소란 속에서 촌각의 여유도 없이 분주하게 삽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또 이렇게 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이런 상황,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틀, 이 의식 구조에서 불교는 과연 무엇일까? 이 같은 현대 사회에 과연 불교가 발붙일 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나 할까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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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4
그리고 ‘이런 현상을 불교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질문도 생깁니다. 우리의 이 현실을 부처님이 경전에서 설하시는 용어들을 빌려서 이해하려고 하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매번 생각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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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5
여러분이 불자라면 바쁜 도시 생활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내가 살아가는 이 분잡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삶의 의미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분잡한 도시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가장 불자다운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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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6
이제 이 일상의 문제를 불교 용어로 생각해보려고 하면 당연히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이연기법은 사성제四聖諦라는 불교의 뼈대를 형성하는 가르침의 주축입니다. 사성제는 사실은 십이연기법을 주축으로 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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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7
사성제 제일 앞에 고성제苦聖諦가 있지요. 고성제는 입문이자 문제 제기입니다. 일반적 의식 구조에서 조금만 냉철하게 보아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부딪히는 현실은 갈등의 연속이요, 고통스러운 것이요, 불만족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 제기 혹은 입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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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8
그 문제의식 하에 ‘이 고통스러운 현상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지며, 고통의 내용과 범주가 어디까지 걸쳐 있는 것이며,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지요. 이같이 고성제에 대한 자각 위에서 문제를 깊이 사유해 들어가는 것이 집성제集聖諦입니다. 이 고苦는 우리가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고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말 그대로 끝까지 파고들어 가는 노력이 바로 집성제입니다. ‘끝까지 파고들어 간다’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 능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일반적 인식의 범위가 다하는 곳에서부터는 다른 어떤 능력과 방법까지 다 써서 더욱 파고들어서 구경究竟을 살피는 것이 바로 집성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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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9
그 깊은 원인, 구극의 원인을 파헤친 다음에는 ‘그러면 고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가 나오지요. ‘그 원인을 거꾸로 따라 들어가 소멸시키면 된다’라는 지혜로운 판단 위에서 그 원인을 멸하는 단계에 이르는 목표의 설정, 이것이 멸성제滅聖諦입니다. 그리고 멸성제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서 고의 멸을 실현하고 체득하느냐? 이것이 도성제道聖諦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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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10
사성제는 불교 전체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니까, 불자가 된다는 것은 사성제를 따라서 공부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불자로서 어떤 문제를 생각한다고 할 때는 일반인이나 학자로서 생각한다는 것과는 달리 관련된 문제를 그 고苦에 대입시키면 됩니다. 사성제에서 ‘고의 원인이 뭐냐’ ‘고의 원인을 멸하는 길이 뭐냐 라고 하듯이 우리가 부딪히는 어떤 문제든지 그것을 고의 자리에 대입시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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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5.2.11
가령 불만이 있으면 ‘불만의 원인이 뭐냐?’라고 대입합니다. 또 이 사회가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하면, ‘소란스러움의 원인은 뭐냐?’라고 묻는 겁니다. 세상이 비관적이다 하면 ‘비관적으로 보이는 원인은 뭐냐?’라고 하면서 그 원인을 찾는 자세를 대입시키는 겁니다. 매사에 그렇게 원인을 규명하고 그 원인을 멸하는 길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불교 공부를 하는 불자의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마음가짐에 대해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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