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천만 번이라도
Paragraph 4.6.1
하루에 천만 번이라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금생이 성불의 기초를 닦는 한 생이 되는 셈인데, 얼마나 복된 한 생을 사는 것입니까? 얼마나 선택된 생, 축복받은 한 생을 사는 것입니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지금·여기’에 마음을 붙들어 매는 공부의 성패에 달렸습니다. 잘 안 되어도 좋으니까 끊임없이 숲속으로 도망가는 마음을 붙들어 오십시오. 하루에 천 번이면 천 번, 만 번이면 만 번, 천만 번이면 천만 번 붙들어 맵니다. 붙잡아다가 자꾸 붙들어 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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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2
‘공부가 여의하게 잘 된다’는 그 경계에 욕심내지 마십시오. 내가 얼마나 지금·여기에 이 마음을 붙들어 매어서 코끼리가 요동하지 않고 순순히 응하도록 길들여 가느냐 하는 문제일 뿐이지, 다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하고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붙들어다가 지금·여기의 말뚝에 매십시오. 말뚝은 다름 아닌 사념처입니다. 사념처라는 말뚝에 매십시오. 즉, 지금·여기에 매라는 말입니다. 그 외에는 다 지금·여기가 아닌 과거이거나 딴 곳입니다. 엉뚱한 곳에 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여기라는 사념처에 바로 매십시오. 그래서 길들지 않은 마음, 이 야생 코끼리 같은 마음을 틀림없이 길들입시다. 이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누구나 다 같습니다. 이 마음에 내가 자꾸 번롱을 당하지요? 그러니까 자꾸 붙들어다가 마침내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마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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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3
왜? 마음이 마치 술 취한 운전사처럼 제멋대로 차를 몰면 차 뒤에 앉은 주인은 금방 무슨 꼴을 당할지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절박합니다. 택시를 타도 마찬가지입니다. 택시기사가 거친데다가 술까지 마셨고, 지금 기분이 대단히 나쁘다 하면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런데 이 마음이 지금 술 먹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기사가 아닙니까. 그 마음이 나를 끊임없이 운전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아, 그건 내 마음이야’ 하고 엉뚱하게 착각하면서, ‘내 마음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지’ 하고 우기렵니까? 단 1분만 앉아서 자기 마음을 한번 관찰해보십시오. 내 마음이라 생각했던 것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기는커녕, 그놈은 완전히 딴 놈입니다. 제멋대로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주문을 안 들으려 하니까 천 번 만 번 쫓아가서 데려와야 할 게 아닙니까?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으면 붙잡아다 한 번만 매버리면 끝이지, 길들이고 자시고 할 것 뭐 있겠어요? ‘내 마음’이라고 하는 그 마음, 그거 내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여기가 아닙니다. 완전히 과거의 산물이고, 과거의 흔적이고, 과거의 영향력입니다. 그 과거는 다생겁의 옛날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 이전까지의 과거입니다. 그러한 과거의 산물, 굳고 응고된 그 영향력이 ‘마음’이라고 속이면서 우리 앞에서 온갖 요사한 애걸과 아양을 떨어서는 ‘이게 내 것이다’ 하고 믿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은 순간에 그 사람은 속은 겁니다. 그게 어떻게 자기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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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4
느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 위로 분명히 뭐가 기어갑니다. 그걸 내가 느낍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느낌이 나를 분명히 속였는데 속인 놈이 잘못입니까, 속은 사람이 잘못입니까? 우리가 속지 않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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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5
마음, 이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마음 때문에 후회할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지릅니까. 돌아서서 얼마나 후회를 합니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이건 온전히 자기 나름대로 놀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지 ‘내 마음’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내 마음’이라고 얼마나 철석같이 믿습니까. 만사가 거기서부터 어긋나는 겁니다. 그래서 이 고해가 연출되는 것이지요. 고해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 착각, 이걸 불교용어로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이 무명 때문에 사바세계의 고해가 다 연출되는 것 아닙니까.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 해서 그것을 적으로 삼을 필요도 없어요. 마음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야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내 것 아니라고 깨달은 순간, 그놈을 버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천만에 말씀, 마음을 버리고 도보로 전쟁터에 나가면 상대방은 코끼리를 탔는데 싸움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 마음을 길들여야 합니다. 길들이지 않은 게 죄지요. 그걸 ‘내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길들일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지요. 이제 알았다면 그 마음을 길들여서 타고 나가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 것이니까 ‘내 마음’이라는 말조차 쓰지 말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라고 해놓으면 공부가 안 됩니다. 근본 착각일 뿐인 ‘내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합니까? ‘그저 여기 마음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지금 나라는 마당 위에서 어떤 과정을 연출하고 있다’고만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관찰 대상이 됩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팔정도를 닦고, 그래서 심념처의 말뚝에 매어 세밀히 살펴보아야지요. 그런 방식으로 그놈을 관찰하고 붙잡아서 길들여낸다, 그 길들여진 마음을 타고 부처 되는 길을 나아간다, 팔정도를 나아간다, 타고 가는 거다, 마음이라는 길들여진 놈을 타고 나아간다, 이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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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6
다시 말씀 드리건대, 성격이나 태도가 ‘완고하거나 완강하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과거를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긴 과거일수록 그것이 지배하는 모습은 완고합니다. 반면 미래만 지향하며 살 때는 완고함과는 반대로 너무 낙천적이라 할까 철없다 할까, 말하자면 희망에 부풀기 쉽고 희망이라는 장밋빛 색깔에 속기 쉬운 또 하나의 환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래에 살면 소위 낙관주의자나 환상가가 되기 쉽고, 과거에 살면 완고하고 이른바 현실적인 사람, 그래서 과거 경험들의 교훈에 매여서 현재를 사는 사람이 됩니다. 과거의 경험이 아무리 뼈저리고 절실했다 하더라도 자기를 묶는 가치로서 과거를 계속 존속시키는 것은 굳은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과거를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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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7
또한 여기를 벗어나 바깥을 주로 헤매는 사람일수록 나와 남의 분열 구조에 매입니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자기만 챙기는 자기중심주의자 또는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지요. 이기주의가 어디서 오겠습니까? 자꾸 바깥을, 대경을 생각하고, 거기에 정신을 팔고, 대경에 기대했다가 속았다든가 하면서 대경과 나를 대립시키다 보니 점점 더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여기를 떠나는 사람일수록 더 자기 본위적으로 되고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며 완고한 고집쟁이나 환상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칠 수밖에 없습니다. 환상가나 완고한 옹고집이 어떤 수로 남을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적 폐만 안 끼치면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잘 사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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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8
반면 과거나 미래, 바깥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와 지금·여기에 정신을 매어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바깥을 헤매는 일이 줄어드는 만큼 들뜸이 가라앉을 것이고, 들뜸이 가라앉는 만큼 고요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겠지요? 고요한 만큼 나와 남을 분별하기보다는 나 속에서 일어나는 오온을 관찰하고 있으니까 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남과 나를 대립시키고 있을 때는 물을 계속 휘저어 구정물이 되지요. 하지만 자기 오온을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그 물은 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라는 것의 실체를 아니까 이기적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 무언가를 바라서 이타행을 하는 사람도 될 수 없습니다. 남도 다 오온五蘊의 가합假合이니까요. 따라서 그 사람은 나나 남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습니다. 나에 대한 환상도 없고 남에 대한 환상도 없습니다. 그만큼 환상에서 벗어나 밝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여기를 사는 사람은 고요하기 마련이고, 맑기 마련이고, 점점 더 밝아지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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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6.9
앞서 ‘마음을 타고 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지금·여기에 길들여진 마음을 타고 가야 합니다. 그 멋진 코끼리를 타고 부처 되는 길, 곧 팔정도를 나아가는 것입니다. 팔정도. 처음 우리가 올라설 때는 도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단계에 가서 특히 바른 마음챙김, 정념에서 길들여진 마음을 타면 그때는 도보가 아니고 특급 버스 또는 특급 열차를 타고 가는 겁니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정념正念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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