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외출 길들이기
Paragraph 4.5.1
무단외출 길들이기
우리 마음에는 어떤 바람이 있습니다. 한참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 그 바람이 경계로 나타납니다. 그때 사람들은 지금·여기를 벗어나 경계로 나타난 바람 속에 안주합니다. 그래서 험난한 길로 빠져 들어갑니다. 만약 우리에게 바람이 없다면, 왜 마경이나 헛것에 속아서 야단법석을 떨겠습니까. 다 자기 스스로 만든 환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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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2
지금·여기를 떠나서 과거나 또 가끔은 미래 다른 곳에 가서 만나는 환상, 그걸 명색名色이라고 합니다. 명색에 정신 팔리는 버릇, 그 버릇에 물들어 있으면 바로 십이연기에서 말하는 바 ‘식識이 있으면 명색이 있고, 다시 촉觸·수受·애愛·취取가 있어서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바깥 외출이에요. 외출의 구멍이 육입六入입니다. 따라서 육입은 육출六出이기도 하지요. 육처六處지요. 육처를 통해서 우리 식識이 끊임없이 명색을 통해 바깥에 나가서 촉·수·애· 취를 만나지요. 그렇게 바깥으로 나가니까 정신이 팔리지요. 정신이 팔리니까 ‘좋다, 나쁘다’가 일어나서 애착도 생기고 집착까지도 생겨서 또 다음 생을 맞는 것이지요. 그런 결정적인 집착의 덩어리를 자꾸 만들고 앉아 있어요. 이것을 ‘윤회輪回’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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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3
악동이 공부는 안 하고 자꾸 집밖에 나가서 놀기를 좋아하듯이 중생도 육처라는 구멍을 통해 자꾸 나가서 명색을 만나서 노는 겁니다. 여러분도 고3 자제들을 단속해서 책상 앞에 자꾸 앉히고 싶어 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육처를 통해 무단가출해서 밖에서 자꾸 놀려고 드는 마음의 버릇을 멈추도록, 그래서 차분하게 지금·여기라는 교과서 공부를 하도록 책상 앞에 앉혀야 합니다. 우리가 명색에 부단히 정신을 팔고 있을 때는 부처님의 학교를 나가서 놀이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공부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 안 한 결과, 재수생이 겪는 고통처럼 사바세계 유급생의 고통이 따릅니다. 해탈해야 졸업할 텐데 졸업은 안 하고 계속 윤회의 유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부모 만나서 잔소리 들어야 하고, 고3 학생 두고 잔소리해야 하는 고통이 계속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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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4
그러면 어떻게 명색을 가지고 노는 유혹에서 벗어나 지금·여기를 챙겨서 능히 교과과정을 마치고 거뜬하게 졸업하느냐? 부처님 가르침대로만 하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 진실성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스스로가 속이려고 들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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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5
아무리 부처님 열 분 스무 분이 나오셔서 아무리 좋은 말씀 해보셔야 소용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려고 들 때는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뻔뻔하기 짝이 없고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면 어쩔 수가 없지요. 공부 못하겠다고 하는 구실이야 무궁무진하니까. 공부 안 하겠다는데 어떻게 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공부에 임하고 자기를 속이는 것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직시만 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공부할 태세가 다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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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6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금·여기에 간단없이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간단없다’는 말은 끊임이 없다는 뜻입니다. 토막토막 자꾸 끊이지 않고 간단없이 되면 제일 좋겠지요. 그러나 처음부터 어떻게 간단없이 됩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간단없기는커녕 실타래 자체가 저쪽에 가 있지요. 여기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실이 아예 실 타래째로 저쪽에 나가 있어요. 여기는 실도 없으니까 가서 자꾸 끌어와야 할 판이라, 그러니 처음부터 간단없기까지 바랄 수는 없는 형편이지요. 지금은 마음 챙기는 공부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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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7
부처님이 비유하셨듯이 길들여지지 않은 코끼리가 숲속을 자꾸 방황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식들이 바깥에 나가서 자꾸 놀려고 합니다. 그와 같아요. 그런데 그 코끼리를 전쟁터에 타고 나갈 수 있게 길들이자면 바깥 숲속을 돌아다니는 놈을 가서 사냥해야 합니다. 붙잡아야 합니다. 붙잡아서 코끼리 훈련장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그러고는 도망을 못 가도록 튼튼한 말뚝을 박아서 코끼리를 묶어야지요. 끊기지 않을 만큼 강한 줄로 단단히 묶어서 힘센 코끼리가 풀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말뚝에 붙들어 매야 합니다. 그 다음에 먹이를 주기도 하고 굶기기도 하고, 때로는 코끼리 길들이는 창으로 고통도 좀 가하고, 때로는 상으로 좋아하는 먹이도 주고 어루만져도 주고 하면서 길들여야 합니다. 이 코끼리가 숲속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버릇을 완전히 끊어서, 심지어는 화살이 날아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주인의 뜻을 따라서 전진해야 할 때는 전진을 하고 후퇴해야 할 때는 후퇴를 하고, 왼쪽으로 가야 할 때는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가야 할 때는 오른쪽으로 갈 정도로 길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됩니까? 코끼리의 야성이 순화되기 전까지는 그저 생각은 항상 숲속에 가 있어서 어떻게든 줄을 끊고 도망가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이놈이 힘이 세다 보니까 잠시만 방심하면 어느덧 강한 줄을 쉽게 끊고 도망 가버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포기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지금 임금이 이 코끼리를 길들여 전쟁터에 타고 나가서 싸워야 할 판인데 코끼리 도망갔다고 포기하겠어요? 그래서 천 번이든 만 번이든, 하루에 십만 번이라도 코끼리를 다시 붙들어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든지 말뚝에 매서 길을 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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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8
이 마음이라는 놈, 이것이야말로 내가 탐·진·치라는 적군과 싸울 전쟁터에 타고 나갈 유일한 탈 것입니다. 전쟁터에 타고 나가서 적군을 무찌를 수 있는 믿음직한 코끼리를 만들려면 거듭거듭 숲속으로 도망치는 코끼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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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9
‘나는 유별나게 코끼리가 잘 도망가.’ ‘마음이 자꾸 숲속으로 도망가.’ ‘나는 인연이 없나 봐.’ 누구든지 그렇게 말합니다. ‘부처님 같은 분, 공부하는 분들은 별난가 봐.’ ‘나는 이렇게 하루에도 십만 번이나 더 도망을 가는데 그분들은 처음부터 잘 되는가 봐.’ 이렇게 착각합니다. ‘나는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해도 해도 안 돼요. 도저히 나는 안 되나 봐요’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잘못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야생 코끼리가 숲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라고 안 그렇겠습니까? 예외 없이 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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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10
물론 예외가 있어서 처음부터 차이가 있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그분은 전생에 남 못지않게 고통스럽게 공부를 한 결과겠지요. 전생에서 한 공부 성과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집중이 조금 더 잘 되는 겁니다. 닦은 사람이 닦은 만큼 선근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라고 해서 전생에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전생에 공부를 했거나 말거나 금생에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부당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전생에 공부를 안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지, ‘나는 안 되나 봐’ 하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금생에 노력하면 그 공부 잘하고 있어 보이는 누구만큼이나 내생에 나도 잘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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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11
그런 이치니까 부처님도 ‘예류과豫流果를 이룬 사람은 일곱 생 안에 성불한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일곱 생 안에 되는 사람을 예류과, 또 한 생만 더 하면 되는 사람을 일환과, 일래과一來果라 하지요. 한 생만 더 하면 되는 사람이 금생에 보이는 모습과 예류과는커녕 범부 중생일 뿐인 내가 같을 수는 없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한 생만 더 하는 그분이 사는 모양을 우리가 보면 정말 기적적으로 산뜻합니다. 참 공부가 잘 되고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오늘이 있기까지 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겠습니까. 부처님 《본생담Jātaka》을 보면 부처님이 얼마나 많은 다겁생을 공부에 바쳤습니까. 부처님이 어떨 때는 원숭이도 됐다가 어떤 때는 도적도 됐다가, 참 수많은 생에서 처절할 만큼 사바세계 고苦를 겪으셨습니다. 배신도 당하고 고통도 겪고 팔다리가 끊어지는 형벌도 받고 별별 일을 다 겪습니다. 그게 다 수행입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부처가 되셨는데, 우리는 그 과정은 다 생략하고 보기 좋은 최종 장면의 부처님만 보고서는 ‘나는 그렇게 안 되니까 공부 인연이 없나 보다’ 한다면 그것은 어린애 투정도 아니고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지요. 나도 부처님의 본생담에 해당하는 전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나도 부처님이 그랬듯이 별별 경험을 다 쌓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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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12
하지만 우리는 부처님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길을 걷는 기회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무나 누리는 기회가 아닙니다. 보십시오. 지금 이 지구상에 과연 몇 사람이 그 길을 즐겁게 걸으려고 합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종교적 편견이나 무슨 가치관 등 별별 것을 다 내세워 부처님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래도 전생에 뭔가 닦았기에 그나마 금생에서 불법을 좋아하는 인생을 살고 적어도 불자가 되었겠지요. 불자 중에도 사이비 단계 내지는 중간단계, 혹은 덜 익거나 익은 단계 등 다양한 수준이 있지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불교를 믿으면서도 무당이나 찾아다니는 불자도 있겠고, 스님들에게도 무당이기를 요구하는 신도도 있겠지요. 무당 효험이 없으면 그 절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효험 있다는 바위 앞에서 기도도 합니다. 그것도 불자들의 다양성입니다. 누구나 다 겪고 있는 일 아닙니까? 모두가 다양한 단계를 거쳐 나가면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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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5.13
그러나 우리가 금생에 모처럼 불법을 만난 인연을 한층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精髓인 팔정도八正道를 마침내 찾아서 그 길에 깊이 들어서야겠습니다. 팔정도 분상에 들어서면 이미 종교니 뭐니 다 사라지지요. 종교 편견이 그 어디에 발붙일 데가 있으며, 무슨 사회적 편견이 발붙일 곳이 있습니까? 그런 제대로 된 불자가 되어서 하나의 종교 형식을 넘어선 부처님의 그 보편하고 그 넓은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여태까지 살아온 금생의 결산을 한번 멋지게 하는 거다, 이 말입니다. 만일 내생에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확고한 공부의 기반을 금생에 닦는다면 공부가 잘 되든 안 되든, 잘 안 되어서 어떨 때는 절망에 빠지든 말든, 여러분 금생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회의 향상도정에서 보면 정말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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