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공부
Paragraph 4.4.1
‘지금·여기’ 공부
‘지금·여기’에 마음이 기쁘고 들뜨면 그럼 기쁘고 들뜨는 것을 보라. 지금·여기에 욕심이 일어나면 ‘욕심이 일어난다’고 보라. 지금·여기에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성내는 마음이 일어났다’고 보아야지 성내는 마음 상태의 원인이 되었던 바깥 경계를 좇지 말라는 말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서 성이 나고 있다’ 하는 순간에 보통사람들은 말을 한 그 사람에 대해서만 신경을 씁니다. ‘누가 기분 나쁘게 무슨 말을 해서 내 심기를 다 건드렸어, 나쁜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맹렬한 사고 활동이 시작되면서 증오하고 원망합니다. 별별 마음을 다 일으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면 실타래에서 실이 풀리듯이 끝없이 풀려나가면서 점점 요상한 요인들이 첨가되고 가속화되어서는 더 맹렬해집니다. 이 모두가 사바세계에서 삶의 모양을 짓는 과정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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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2
우리가 불행하거나 비참한 것도 다 그 때문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고통을 하소연하지만 정작 사실을 들여다보면 딴 판입니다. 지금· 여기에 증오가 일어날 때 ‘증오가 일어난다’고 보아야 할 텐데 지금·여기가 아닌 바깥에 있는 남을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다’는 사실만 챙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무슨 말을 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바깥에 마음을 다 팔고 있으니 자기 내부에서는 갈등과 고뇌가 끝없이 실타래처럼 이어가건만, 거기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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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3
이렇게 되면 공부인이 아니지요. 공부의 ‘공’ 자도 모르는 탓이지요. 공부인이라면 빨리 바로 지금·여기를 챙겨야 합니다. 0.1초만 지나도 과거입니다. 아까 누가 금방 누가 무슨 말을 했다 해도 그것은 과거입니다. 지금 하고 있다 해도 그 말은 금방금방 과거로 되고 있기 때문에 내내 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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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4
그러므로 바깥은 필연적으로 과거입니다. 그러한 바깥, 남, 누가 무슨 말을 했다 따위는 전부 과거입니다. 지금·여기의 오온이 아닌 바깥의 오온, 남은 벌써 관념적인 대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친구다, 적이다, 친절한 사람이다, 불친절한 사람이다, 이것은 모두 관념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판단했든 어떤 근거에 입각해 판단했든, 다 과거에 기인해서 설정해놓은 관념체계의 산물입니다. 그 관념체계를 나의 상전으로 계속 모시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온 마음을 그쪽에 쏟고 있는 것입니다. 끝이 없지요. 그것이 신일지라도, 하느님일지라도, 부처님일지라도 다 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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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5
공부인은 정신을 과거에 잠시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여기가 아닌 바깥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정신을 뺏긴다’는 말과 ‘챙긴다’는 말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바깥에 무엇이 있든 간에 안 보겠다 하면서 눈 딱 감고 ‘나 몰라라’ 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눈 딱 뜨고 그것을 보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지금·여기를 보는 것은 그런 태도가 아닙니다. 더 깊이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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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6
누가 나를 향해 무언가 말하고 있을 때, 내가 그 말을 듣고 말뜻을 헤아리는 데 온통 정신을 쏟고 그 말의 흐름에 내 마음이 매몰되고 함몰되고 지배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신 팔린 것입니다. 분명히 말을 듣고 있습니다. 뜻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식의 집중처에 마음을 딱 앉혀서 내가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관하고 있다면 그것은 마음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들으면서 그 말을 듣고 있는 자신의 의근意根, 즉 육근六根 중의 의근에서 지금·여기 일어나고 있는 일을 관하고 있다면 마음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남이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하고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지요. 오히려 더 잘 들을 수 있지요. 더 정확하게 들을 수 있지요. 덜 주관적인, 비주관적인 태도로. 듣고 있는 것은 제대로 듣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들음은 그 자체로 항상 거기서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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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7
거기에 대해서 내 마음속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다른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의 반응, 예를 들면 거기에 대해서 ‘기쁘다, 슬프다, 노엽다, 즐겁다’ 하는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대로 또 관찰 대상이 됩니다. 그 마음 반응의 실타래에 얽혀 줄줄줄 이어져 나가도록 맹목적으로 방치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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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8
그렇게 하는 것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즉 마음을 챙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몸으로부터 시작해서 오온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게끔 발전합니다. 보는 눈이 계속 발전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행주좌와 간에 어묵동정 간에 그 모든 신행과 그에 뒤따르는 여러 느낌, 마음, 법, 이 모든 것을 다 관觀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스스로를 꾸준히 훈련하게 됩니다. 이 훈련을 보통 ‘공부’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오온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행을 다 관하면서 하나라도 잠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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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9
과거에 매여 살던 때는 바깥 경계가 끊임없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바깥 경계가 나를 지배하면 끔찍한 고통의 연속이지요. 바깥 경계에 무슨 즐거운 일이 있습니까? 심지어 가장 맛있다는 음식도 계속 즐기다 보면 배탈이 나고, 단것을 많이 먹으면 당뇨가 온다느니 기름진 것을 많이 먹으면 고혈압이 온다느니 별 공포스러운 이야기와 생각들이 따라오고,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니 바깥 경계에 정말 즐거운 것이 뭐가 있기나 한지 의문입니다. 정말 즐거운 일이 바깥에 있을 수 있을까요? 즐거움이 몇 순간을 더 지속하는가 싶다가 바로 본색이 드러나는 경험을 여러분도 많이 했지요? 즐거움이 바로 고통의 씨앗이지요. 바깥 즐거움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 만나서 반가웠는데 그 친구는 얼마 안 있어 나를 떠나갑니다. 얼마나 괴로워요. 배우자든 자식이든 누군가를 만나서 즐거운 것, 그 느낌이 언제나 기쁨의 원천이 되던가요? 온갖 세상사, 고통의 한 시작이 아니었습니까? 자기 마음과 정신의 주도권 또는 운전 권한을 바깥에 맡겨놓고 사는 것은 참으로 속절없고 불안합니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우리는 이 마음을 더 이상 바깥에 맡겨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마음을 바깥 경계에 맡겨놓고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야박한 이야기 같지만 이제는 바깥에 맡겨놓았던 마음을 내가 다시 챙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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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10
무아無我와 같은 불교의 근본 개념을 너무 비근한 데다가 함부로 적용시켜서 그것을 챙기려고 하면 그건 공부가 순서를 잃은 것입니다. 옳게 챙겨야 무아의 깨달음에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옳게 챙기지 않으면 무아는커녕 아무것도 못 이룹니다. 그래서 순서 있고 체계적인 접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처님은 법을 깨닫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해주려고 나오셨지, 법을 만들어 우리에게 선사만 하려고 나오신 것은 아닙니다. 불제자는 부처님을 만났기 때문에 마땅히 그만큼 체계적으로 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법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한 개념과 이야기들에 미리 훈습되어 가지고 사고가 단계성, 체계성을 생략하거나 소홀히 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불교는 겉멋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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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4.11
체계적으로 닦는 법의 시발이 바로 마음챙김이지요. 우리는 마음을 자꾸 챙겨서 지금·여기에 일어나고 있는 오온의 작용, 오온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간단없이 지켜보도록 애써야겠습니다. 그리하면 부처님의 그 크고 거룩하고 깊은 가르침을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해탈’도 육도 윤회를 끝내는 거창하고 궁극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요한소리〉에서 나온 《자유의 맛》이라는 책 보셨지요? ‘자유의 맛, 해탈’이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가깝게 다가옵니까. ‘기아로부터의 해방’,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때, 그 해방이 바로 자유입니다. 이것이 해탈입니다. 우리가 어떤 습관으로부터만 벗어나도 바로 해탈입니다. 궁극 해탈이 아니라는 것뿐이지. 그러니까 해탈은 비근한 데서부터 시작해서 구경究竟에까지 걸쳐 있습니다. 우리도 비근한 데서부터 시작해서 구경에까지 나아가면 됩니다. 그 나아가는 길이 처음에는 쉽고 뒤에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길은 같습니다. 내내 지금·여기에서 마음을 챙기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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