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Paragraph 4.2.1
지금
‘지금·여기’라는 말은 너무나 쉬운 뜻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바로 ‘지금·여기’입니다.
‘지금’은 과거나 미래에 대비되는 개념이지요. 현재라는 뜻입니다. 지금에다 마음을 챙긴다 함은 말 그대로 과거나 미래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음입니다. 과거나 미래라는 것은 뭔가? 사실상 과거, 미래는 또 하나의 관념 세계입니다. 무엇이 과거입니까. 어제 그저께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우리에게 기억의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이는 곧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리얼real한 것이 아니다, 현실reality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과거는 지나간 것이지요. 지나간 것은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기억은 우리가 겪었던 경험의 어떤 측면에 치우친 관념적 인식입니다. 예를 들면 강렬했던 어떤 부분, 강렬했던 인상이나 느낌,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와 같이 사람이 사물을 강약으로 받아들이는 틀로 가공된 것이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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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2
어떤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중심으로 해서 느끼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름답다 추하다 하는 측면에서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 다릅니다. 똑같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미추美醜를 중심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선악善惡을 중심으로 강렬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이로움과 해로움을 중심으로 강력한 인상을 받아서 기억하고 간직하는 사람 등등 다 다릅니다. 이는 그 사람의 ‘업을 짓는 경향성 혹은 특징’이라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인식도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아, 그 사건 참 기분 좋았어’, ‘나빴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참 아름다웠어’, ‘추했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참 이로웠어’, ‘해로웠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되는 한 가지는 과거 사건이 어떤 부분의 인식으로만 존재하지 리얼한 모습으로 눈앞에 전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자기의 업상 속에 이미 갈무리되어 관념화된 추억일 뿐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러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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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3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부처님 말씀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지도 않는데,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각기 자기의 성향대로 여러 가지 많은 바람을 가지고 대합니다. 청소년기의 무지갯빛 꿈으로 미래를 대하는 성향이 있는가 하면, 장년기의 아주 실질적인 이해타산의 감각으로 미래를 부지런히 계산하는 성향도 있고, 노년기의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미래를 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개인적 소양이랄까 업의 경향성에 따라서 미래가 존재하는 모습도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모습도 각양각색입니다. 그런데 미래가 아직 오지 않은 상태로서 실재하지 않고, 그 사람의 성향에 비친 관념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역시 동일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 눈앞에 있지 않은 하나의 허상입니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 실제 사물을 보듯이 보는 것이 아니고 관념의 창구를 통해서 관념 조작을 하면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허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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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4
그런데 이런 과거나 미래가 우리에게 행사하는 힘은 대단히 큽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를 거의 끌어안고 삽니다.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고, 현재는 과거의 추억을 일으키는 하나의 모멘트로서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을수록 미래에 대한 꿈만 꾸면서 사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왜 과거를 살고 미래를 살아, 현재를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게 바로 사바세계의 구조적인 갈등이에요. 당연한 그것을 못 한다 이 말입니다. 당연히 현재를 살아야 할 텐데……. 조금만 체계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자신이 얼마나 과거에 살고 있는지, 가끔은 미래에 살고 있는지, 또 현재에 살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적은지 말입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렇습니다. ‘나는 현실주의자야’, ‘나는 현재를 사는 자야’ 하는 사람들도 엄밀한 의미에서 대부분 과거를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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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5
우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부터가 과거입니다. 과거에 겪은 것이 되풀이되는 동안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는 굳어진, 그 어떤 과거 성향의 유산이 지금의 우리를 구속하고 있을 때, 그리고 과거에 생각해서 판단했던 것들이 하나의 가치관이 되어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이미 과거를 사는 것이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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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6
‘좋다, 나쁘다’ 하는 것도 자세히 보면 황당무계하지요. 과거의 어떤 시점에 또는 어떤 가르침의 분위기 속에서 무엇인가를 좋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나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것이 되풀이되며 어느덧 자기의 습관과 성향이 되어 지금의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사람 또한 과거의 수인囚人이다 이 말입니다. 과거에 갇혀 사는 수인. 통념이라는 지극히 속기 쉬운 어떤 관념적 사고 성향을 습관적으로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를 과거식으로, 과거의 수인으로 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이 사바세계가 우리를 그렇게 꽁꽁 묶어놓습니다. 남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을 적당히 산다는 자체가 과거에 갇혀 살기를 강요하는 체제입니다. 우리 주변에 온통 범람하고 있는 여러 가치관, 그 언어들 전부가 다 과거의 소산이거든요. 그 과거들이 어떤 때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어떤 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또는 가치관이라는 이름으로, 논리적 필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별별 이름과 명분을 달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로 과거를 살고 현재는 생략하고 있는지는 상상을 넘어섭니다. 부처님은 그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셨기에 ‘지금을 살지, 과거를 살지 말라’고 간절하게 타일러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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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7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고 하루하루 새 날을 맞이하면서 그만큼 구각에서 탈피하고 더 발전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뭘 요구합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면 무난히 중학생이 되기를 바라고, 그 다음에는 고등학생이 되기를 바라고, 그 다음에는 대학생으로 올라가기를 바라지요. 그 자리에 머물길 바라진 않습니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유급이라고 하지요. 얼마나 끔찍이도 싫어합니까? 그런데 우리 정신이 과거의 수인이 되어서 과거에 받아들였던 어떤 가치관, 과거에 결단하면서 채택했던 가치관에 맹목적으로 매이고, 그 가치관이 오늘의 삶을 사는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유급생 아닙니까? 바로 낙제생 아닙니까? 부모는 낙제하면서 자식들은 진보하라고 하면 그 말은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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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4.2.8
그런 중대한 모순이 자신도 모르게 바로 우리 생활 깊숙이 도사리고 앉아서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사회체제는 온갖 장치를 통해 우리가 깊이 숙고하지 않도록, 그러한 관념과 허상들의 끝도 없는 유희에 계속 춤추고 놀아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신문, 잡지, 책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양서나 악서 가릴 것 없이 우리를 과거의 수인으로 머물도록 강요하고 있지요. 그래서 허상 속에 살면서 계속 허상을 좇도록 아주 입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각 없이, 이 사회체제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조금 틔워준 숨구멍, 그저 그 구멍만으로 숨 쉬면서 마치 자기가 끝없는 발전이나 하고 있는 듯 현실에서 유급하지 않고 진보하고 진학하고 있는 듯이 착각하면서 자식들에게도 그런 길을 걷도록 강요하고 있다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이 ‘지금을 보라’, ‘지금을 챙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부처님 가르침에 ‘지금’이라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깊은 뜻을 지닌 말씀인지 여러분 충분히 짐작이 가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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