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진리성
Paragraph 3.9.1
구조의 진리성
사성제가 ‘고’를 중심으로 짜였다고 해서 ‘고苦만이 절대 진리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왜 하필 ‘고’만이 진리라야 하는가? 경에는 고의 자리에 다른 말이 대신하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번뇌’ 혹은 ‘루漏’라고 번역하는 ‘아아사와āsava’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아사와는 고의 자리에 대신 쓰기도 하니까, 고·집·멸·도 대신에 ‘아아사와, 아아사와의 일어남, 아아사와의 멸함, 아아사와의 멸에 이르는 길’ 이런 식으로 나온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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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9.2
그러므로 고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법의 체계로서 사성제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왜 있느냐. 이것은 멸해진다. 그 멸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고를 넣을 수도 있고, 아아사와를 넣을 수도 있고, 십이연기의 각 항목을 넣을 수가 있겠지요. 예컨대 ‘이것이 집착이다. 이것이 집착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집착의 멸이다. 이것이 집착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구도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성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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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9.3
부처님께서 고를 강조하신 것은 중생을 위한 배려입니다. 왜? 우리 중생이 조석으로 경험하는 게 고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쉽게 접근하도록 고를 들고, 고의 멸로 열반을 설명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열반은 고의 멸 뿐만이 아닙니다. 열반은 윤회의 멸이고, 존재의 멸이고, 낙樂의 멸이고, 제행의 멸, 말하자면 일체 법의 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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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9.4
그러한 관점에서 여러분, 집에 돌아가시면 《사성제》(〈고요한소리〉, 법륜15) 다시 한 번 읽으세요. 너무 ‘고’만 쳐다보지 말고 사성제의 구조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세요.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한 걸음 성큼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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