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苦의 원인
Paragraph 3.4.1
고苦의 원인
그러면 왜 고이며 고일 수밖에 없는가? 세상에는 기쁨도 많고, 도저히 ‘고’라고는 볼 수 없는 측면도 많은데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단정적으로 고라고 하셨는가? 부처님은 ‘그냥 믿어라’ 하시는 분이 아니므로 충분한 해명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확인하려는 욕구가 얼마나 강한데 부처님 권위로 ‘고’라고 선언해놓았다고 해서 통할 리가 있나요? 그래서 ‘고’의 선언에 대한 해명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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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2
바로 집성제集聖諦입니다. 그래서 고성제 다음에 집성제가 뒤따르지요. 집성제는 고의 해명으로서 고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 설명 체계가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이연기도 있고 구연기, 팔연기 등 여러 가지로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십이연기는 연기법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緣起란 이 세상이 어떻게 고일 수밖에 없는가를 체득을 통해서 증명하도록 유도하는 체계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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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3
십이연기 첫머리에 무명無明이 나옵니다. 무명은 고가 발생하는 가장 깊은 원인입니다. 첫 말씀부터 우리를 몽둥이로 내리칩니다. ‘무명 존재들이다 그래서 고통이다’ 어쩌고저쩌고 아는 체해도 기본적으로 무명이다, 즉 애당초 시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무명 속에 있고 우리 자신이 무명이므로 ‘고’다, 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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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4
무명이 있으면 그 다음으로 행行이 있습니다. 그러니 행은 고통을 발생시키는 2차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행은 끊임없는 맹목적인 충동, 어떤 에너지 운동입니다. 행은 ‘간다’는 말이고, ‘행동行動’과 연결되니 ‘가고 움직인다’는 뜻이지요. 한자로 천류遷流라는 말로도 표현했지요. 변천하면서 흐른다, 그러니까 행은 맹목적이고 끊임없이 변해가고 흐르는 움직임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할 때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 운동과 충동이 무상하게 흐른다는 뜻입니다. 이 사바세계가 제행이니 그 행으로 인해 고의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이지요. 즉 고해苦海이지요. 이 행은 십이연기 중 유일하게 복수로 표현됩니다. 제행諸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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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5
다음으로 행이 있으면 식識이 일어납니다. 식은 여러 가지 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식은 무언가 분별하는 작용입니다. 보통 ‘분별식’이라는 말을 쓰지요. 그 분별이란 지혜로운 분별이 아니라 ‘나누어 이해하고, 대립시켜서 이해하고, 다른 무언가에 비추어서 이해하고, 무엇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인식 작용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식은 반드시 아我와 타他를 나누어 사물을 이해합니다. 식으로 사물을 보면 아와 타, 나와 남이 생겨납니다. 나와 남이 있으면 내 것과 남의 것도 있게 됩니다. 나의 것, 남의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좋은 것 나쁜 것, 갖고 싶은 것, 버리고 싶은 것이 나뉩니다. 고요하지 못하고 헐떡거리고 동하는 상태가 행인데, 그 행이 있으면 반드시 나와 남을 구별하면서 모든 갈등을 야기할 소지이자 기본 동인인 식이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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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6
다음으로 식이 있으면 명색名色이 발생합니다. 명색은 말 그대로 이름과 형상입니다. 흔히 색色은 물질적 세계이고 명名은 정신적 세계라고 이해하지만, 이는 조금 무리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정신과 물질이 그런 식으로 구분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해하는 편이 쉽지 않을까요. 이때 눈은 물론 육안肉眼만을 의미하지 않겠지요. 옳습니다. 명은 이름뿐이니까 눈에 보일 수 없습니다. 오관으로 감지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은 다 이름의 조작입니다. 좀 더 발전하면 명은 정신세계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색色은 형상이란 뜻이 있습니다. 형상이 있다는 말은 빛이 있다는 뜻인데, 빛은 그 차이로 형체를 드러냅니다. 똑같은 빛 속에서는 아무 형상이 없습니다. 빛의 차이, 밀도의 차이라든가 색깔의 차이, 성질의 차이, 강도의 차이 등이 있어야 우리가 어떤 형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상의 세계란 빛 에너지가 우리 눈에 차이 있게 느껴지게 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명색은 우리가 경험하는 바, 지각되거나 지각되지 않는 세계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명색은 행과 식의 갈등 유발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세계이고, 그 또한 고의 생성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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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7
명색이 있으면 그 다음에 육입六入이 있습니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감각기관이지요. 이 기관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규정하고, 더 나아가 이런 차원의 세계를 연출해냅니다. 육입을 통해 다차원 우주에서 우리 세계의 차원이 생성되는 것이지요. 결국 육입은 인간이 겪는 온갖 형태의 고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기제라고 하겠습니다. 육입 외에도 육처六處라는 역어도 많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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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8
명색과 육입이 있으면 촉觸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결합하여 감각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고, 형상을 보고, 감촉을 느끼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과 육입과 대상이 만날 때 촉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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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9
촉이 이루어지면 다음으로 수受가 발생합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수가 있으면 애愛가 있게 됩니다. 갖고 싶고 버리고 싶은 갈애, 갈망, 욕망을 말합니다. 좋은 것은 갖고 싶고, 나쁜 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 애입니다. 애증愛憎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 중에 가장 의미 깊은 애는 존재애存在愛, 즉 존재하고 싶어 하는 애라고 합니다.
애가 있으면 취取가 있게 됩니다. 갖고서 놓치고 싶지 않은 아주 강렬한 마음,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붙들고 싶은 마음, 이걸 취라고 합니다.
취가 있으면 마침내 존재[有]가 있게 됩니다. 존재가 있으면 태어남[生]이 있게 됩니다. 태어남이 있으면 늙음과 죽음[老死] 등 각종 고통이 발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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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4.10
이로써 고통이 발생하는 원인과 과정이 연기법으로 설명되었습니다. 그것이 집성제입니다. 이 세상이 왜 고인지, 왜 고일 수밖에 없는지, 나아가 부처님같이 깨달은 분이 보기에 이 세상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연기법으로 체계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상은 연기는 십이연기를 말한다는 인식에서 서술한 것이고 경에는 애와 무명만을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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