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苦의 대 선언
Paragraph 3.3.1
고苦의 대 선언
먼저 고성제苦聖諦. 여러분은 고苦라는 말만 들어도 정나미가 떨어지고 질려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말이지, 내가 지금 바깥에서 지겨울 정도로 만날 겪는 게 고통이라 위안이라도 구할까 하고 절에 왔는데, 절에 오니까 대뜸 고성제부터 가르치려고 드니 얼마나 힘들고 따분한 노릇인가. 불교는 역시 너무 무뚝뚝해서 처음부터 친절미라고는 전혀 없어.’ 이러면서 돌아서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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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3.2
그런데 고苦는 부처님의 대 선언입니다. 부처님이 사성제를 설하신 것은, 단순히 어떤 학자나 예언자의 입장이 아니라 자부慈父로서 자식을 가장 아끼는 아버지가 어떻게든 그 자식을 보살피려는 일편단심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자식이 단 것을 내놓으라고 아무리 보채도 자식의 환심을 사기보다는 자식이 어떻게든 눈을 떠서 힘든 길일지라도 한 걸음씩 향상의 길을 꾸준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자애의 마음이 더 큰 거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군더더기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얘야, 이 삶은 네가 아무리 부모 품에서 평안과 안정을 느끼고 세상의 여러 편의와 행복을 다 누리더라도, 결국은 죽어야 하고 그 죽음을 향해서 하루하루 나아가야 한다. 삶의 문제들은 사탕발림으로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리기 때문에 아직 말을 못 알아듣는다면 기다려주마. 그러나 철이 들면 내가 너에게 할 말은, 이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고苦라는 것이다. 너는 어쩌다 재수 없어서 고통에 빠졌고 남들은 팔자가 좋아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너나 남이나 그 누구나 간에, 스스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도 실제로는 고의 존재로서 살고 있다. 이 고는 세상에서 사는 한 피할 길이 없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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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3.3
‘고’를 다른 말로 ‘갈등’이라고 대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고의 세계는 갈등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구조상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아무리 행복하고,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속절없이 사라져서 나중에 보면 즐거웠던 기억만 있을 뿐, 남은 것은 역시 고苦임을 확인하게 되는 게 엄연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입맛에 쓰고 원치 않더라도 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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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3.4
불교는 어떤 사람이 고를 이해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장했을 때 그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교는 어린이 포교가 잘 안 돼요. 어린이 포교를 하다 보면 이건 기독교인지 불교인지 모호해져버리기 마련입니다. 불교가 전제하는 첫 진리가 고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애들이나 행복의 꿈과 장밋빛 설계 속에 인생을 담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교가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포교라는 측면에서는 불교가 계속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를 믿고 자랐든 생의 고를 직시할 만큼 성장하고 성숙한 시점에는 불교가 어느덧 자기 옆에 와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성숙한 만큼 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세계가 구조적으로 고라는 진리를 다른 측면에서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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