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를 숨 쉰다
Paragraph 3.2.1
사성제를 숨 쉰다
불교는 네 가지 진리로 이루어진 체계입니다. 이를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 해서 사성제四聖諦라는 고유명사를 붙였지요. ‘진리’는 빠알리어로 삿짜sacca이고, 한문으로는 제諦라고 음역했습니다. ‘제’를 후대에 ‘체’라고 읽으면서 요즈음은 ‘사성체’라고 번역하기도 합디다만, 이제껏 읽은 관습대로 ‘사성제’로 부르는 게 편하겠습니다. 불교에서 진리는 사성제의 넷뿐입니다. ‘열반은 진리다’라고 언급하는데 해탈과 열반은 멸성제에 들지요. 그 밖에 부처님이 ‘삿짜’라는 말을 쓰신 경우를 찾지 못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는 사성제뿐입니다. 불교에서 진리 대접을 받는 것은 사성제밖에 없어요. 다른 것은 다 빠리야아야pariyāya, 즉 진리를 설하기 위한 방편이지요.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담겨 정리되어 전달되고 있으니, 불교는 바로 ‘네 가지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이해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에게 물으면 ‘사성제는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성제를 제대로 완전히 터득하면 그게 바로 성불의 경지라 합니다. 우리가 성불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가 사성제를 안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지요. 사성제를 다 알면 굳이 이런 법회에 올 필요도 없고, 공부한다고 더 애쓸 필요도 없지요. 공부가 다 이루어진 거니까. 사성제는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에 우리도 결국 사성제를 매일같이 붙들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어요. 그거 말고 할 이야기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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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2.2
사성제는 진리니까 어떤 면에서는 우리 공부하고는 관계없이 우주에 보편 충만해 있습니다. 우주가 사성제에 의지하고 우주가 돌아가는 질서도 바로 사성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보면 과언일까요. 마치 주변에 공기가 꽉 차 있어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호흡하듯이 진리가 우주에 꽉 차 있어서 우리는 진리를 들이쉬고 내쉬면서 산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가 충만해 있건만 우리는 ‘진리가 뭐지’ 하고 의문을 갖고, 그걸 알려고 새삼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중생인 거지요. 매일 들이마시고 살면서도 ‘모르겠다’ 하니까 바로 미혹迷惑이 아니고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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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2.3
미혹이 부처님 표현으로는 무명無明입니다. 탐·진·치에서의 치암癡闇과도 다릅니다. 치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음을 쓰면서 범하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구체적인 개념입니다. 어리석음, 미혹됨 또는 당황과 초조, 불안, 의심 같은 게 치암입니다. 그런데 무명은 진리를 매일같이 들이마시고 살면서도 ‘진리가 뭐냐? 전혀 모르겠다. 진리는 나하고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큰 착각을 말합니다. 치암보다 더 크고 근원적인 것이지요. 그 무명이 있기 때문에 탐·진·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이연기에서도 무명을 제일 첫머리에 꼽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무명인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바로 무명이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사성제를 알면 바른 견해를 얻어 무명이 깨지고, 무명이 사라지면 십이연기도 사라지고, 따라서 우리는 이미 공부 다 해 마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라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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