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시작이자 끝
Paragraph 3.1.1
저는 출가를 선방으로 했기 때문에 강원에도 다니지 않았고, 은사 스님께서도 경전 보는 것을 만류하셔서 경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은사 스님께서는 ‘한 3년은 참선을 하고, 그 다음에 필요하면 강원을 가든지 경을 보든지 알아서 선택하라’고 엄하게 주의를 주셨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을 찾으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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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1.2
그런 사람이 역경사업에 관여한다고 어쭙잖게 나서고 있는데, 제 나름의 요령이랄까, 길을 잡기는 ‘결국 부처님 가르침은 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듯이 사성제四聖諦가 아니겠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박하게 이해하고 공부해왔는데, 날이 갈수록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중심으로 한 사성제의 이해가 불교의 뼈대이고 그 밖의 모든 말씀은 그것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다’라는 확신이 듭니다. 날이 갈수록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성제에 대한 이해로써 불교 전체를 꿰뚫어보려는 접근 자세로 저 나름의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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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1.3
불교의 시작이자 끝
불교의 시작은 사성제四聖諦입니다. 불교에는 팔정도八正道라는 뚜렷한 수행의 체계가 있고, 그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이 바른 견해, 정견正見이지요. 팔정도의 제일 앞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일단 바른 견해, 정견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바른 견해는 수행의 시작이면서 또 길을 가리키는 방향 제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바른 견해를 이야기하면서 ‘사성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바른 견해이다’라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이는 불교만이 가진 특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되라’ 하는 말이야 어느 종교나 가르치고 어느 교육현장에서나 강조되는데, 불교처럼 ‘사성제를 이해하라’는 말로 공부의 요체를 명확하게 딱 짚어서 이야기해주는 데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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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1.4
사성제의 이해가 바른 견해이고, 바른 견해가 기초가 되어 팔정도의 다른 항목들이 하나하나 거론된다는 것은 불교 공부의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입니다. 그 출발이자 기초가 바른 견해이고, 바른 견해는 고성제苦聖蹄,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로 구성된 사성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체계가 딱 짜여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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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3.1.5
그런데 불교 수행의 끝도 사성제입니다. 〈사념처경四念處經〉은 빠알리 경 가운데 수행법에 대해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말씀하신 경입니다. 이 경에서 말하는 수행도 결국 맨 끝에는 사성제관으로 모아집니다. 〈사념처경〉에는 신념처身念處,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네 가지 염처가 나오지요. 마지막 법념처에서는 첫머리에서 다섯 가지 장애[五蓋], 즉 참선 공부를 방해하는 다섯 장애의 극복 과제를 다루고, 그 다음으로 오취온五取蘊과 육처결六處結, 그 다음으로 칠각지七覺支,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성제가 나옵니다. 사성제를 염하는 것이 참선 수행의 마지막 단계인 것입니다. 결국 불교 수행은 사성제에 대한 이해로 시작해서 수행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사성제를 염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불교는 이렇게 사성제에서 시작하여 사성제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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