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삭힌 마음으로
Paragraph 2.3.1
푹 삭힌 마음으로
그러면 불교하고 연관시켜서 한 번 생각해봅시다. 불교는 심학心學이라 하지요. 마음공부입니다. 대승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는 말을 여러분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일체가 오로지 마음이 만든 바입니다. 그렇게 불교는 마음을 대상으로 합니다. 따라서 불교는 마음을 갈고 닦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고 훌륭한 마음으로 만들어서 쓰는 것을 공부합니다. 참선을 한다, 뭘 한다, 전부 이 마음 하나를 붙잡아서 잘 요리하고 가다듬는 것입니다. 마음을 갈고 닦아 길들여서 그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그 마음의 힘을 가장 아름답게 법답게 살려서 인생을 사는 것, 그 공부거든요. 그것을 이날치 명창의 말에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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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2
‘소리라는 것은 청이 좋아야 좋은 것이 아니여.’

여기서 ‘소리’ 대신에 ‘마음’을 대입시켜서 봅시다. 그러면 ‘타고난 마음이 착하고 좋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좋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 됩니다. 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미 인간 업의 영역에 속했다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자질을 가진 인생이고 마음일지라도 사바세계에 태어났으면 그 한계성은 빤합니다. 인간 영역입니다. 그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덩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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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3
여러분이 자식 낳고 손자 보면 참으로 귀엽고 순진무구해서 그 속에 무슨 탐욕이 있을까, 분노가 있을까 싶겠지요. 그러나 그 애정 어린 눈, 애정에 홀린 눈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면 어린애처럼 이기적인 존재도 없지요. 완전히 자기중심입니다. 조금만 거슬리면 울음을 터뜨려 어른들로 하여금 꼼짝없이 시봉을 하도록 만들어 놓고 자기 뜻을 관철합니다. 아주 이기적입니다. 조금도 에누리가 없어요. 어리나 크나 인간은 탐·진·치 삼독심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인간 몸 받아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지요. 타고난 성품이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이 말이지요. ‘청이 좋아야 좋은 것이 아니듯’, 타고난 그 마음, 날 것의 그 마음으로는 마음공부에 써먹을 수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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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4
왜 그럴까를 불교 용어로 풀어봅시다. 맛의 영역과 소리의 영역,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육처六處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 ‘설舌’과 ‘이耳’ 두 영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영역, 그것은 육처 중 ‘의意’의 영역입니다. 혀에는 미역이, 귀에는 청역이 있듯이 의에 대해서는 법역法域이 있겠지요. 색, 성, 향, 미, 촉, 법이라 할 때 그 법. 의에 대해서는 법이 있지요. 의근意根이 있고 이에 대해 법이라는 대경이 있습니다. 의에 마주하는 바깥 경계가 법으로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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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5
‘의’라는 것은 우리 마음인데, 마음 중에서도 법에 대해 있는 마음, 말하자면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롭고, 도움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법은 선법, 불선법으로 구분하는데, 선법善法이란 우리가 해탈의 길, 즉 도를 닦는 데 유익하고 유용한 것입니다. 반면 거기에 장애가 되거나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착하지 못한 법, 좋지 못한 법, 즉 불선법不善法이라 합니다. ‘악법’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선, 악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선, 불선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또한 불교의 특색입니다. 그래서 선법과 불선법을 가리는데, 그 불선한 요소와 선한 요소를 알아차리는 능력, 그것이 의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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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6
우리가 타고난 생각, 타고난 의로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은 한낱 이름이요 형상입니다. 그것을 명색名色이라 하지요. 보통은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로 풀이하지요. 연기법에서는 ‘식識이 있으면 명색이 있다.’, ‘명색이 있으면 식이 있다.’, ‘명색이 없으려면 식이 없어져야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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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7
사물을 타고난 의로 보면, 즉 생짜인 날 마음으로, 익혀지지 않고 삭혀지지 않은 날 것으로서의 식識으로 사물을 보면 사물은 그대로 명색입니다. 그 명색은 그대로 무상하고, 아지랑이와 같이 실체가 없는 허깨비입니다. 그렇건만 우리가 명색에 한번 홀리면 한 생이 아니라 다음 생, 다음 생, 수십 생을 살아도 그 홀림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명색에 홀려 사는 존재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진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명색에 홀리지 않았다면 금생에 사람 몸 받아 태어나 고해苦海를 사느라고 이렇게 허우적거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색에 홀렸기 때문에 이런 고苦를 겪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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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8
부처님은 명색에 홀려 사는 것은 바로 무지 탓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근본 무명無明이라 하지요. 또한 ‘무지를 벗어나 지혜로 보면 세상 그대로 정연한 법이다, 즉 법계法界다.’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것, 말하자면 생짜 심心, 의意, 식識으로써 보면 법을 법답게 보지 못하고 한낱 명색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타고난 심, 의, 식을 청산해서 법을 법으로 볼 수 있게끔 성숙하라, 그런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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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9
법에 선법과 불선법이 있다는 말은, 선법이 선 자체를 위해, 불선법이 불선 그것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선법과 불선법으로서의 법은 해탈의 길을 도와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건만 우리는 그 법을 제대로 볼 줄 모르니 만날 명색으로 속고 홀려서 헛것을 보면서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 의, 식으로, 특히 의를 중심으로 해서 법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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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10
우리가 절집에 오면 많이 쓰는 말이 있지요. ‘그 사람 마음이 푹 쉬었어.’ 들어봤지요? 마음이 푹 쉬었다. 말하자면 음식이 발효된 상태, 소리가 삭혀진 상태, 제3의 소리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 상태를 마음에 견주려고 이런 말을 찾아냈을 거예요. 우리 민족이 음식을 날로 먹지 않고 발효시켜 삭혀서 먹듯이, 소리도 날것 그대로 타고난 미성, 아름다운 소프라노나 테너 같은 소리를 즐기지 않듯이, 마음도 푹 삭혀 썼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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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11
그러한 전통 때문에 법도 날것으로 취하질 않습니다. 법을 그냥 날것으로 취할 땐 명색이 돼버리지요. 법도 충분히 발효시키고 삭혀서 푹 삭힌 마음으로 법을 즐겼습니다. 푹 삭힌 마음에는 푹 삭힌 법이 있는 것이지요. 익은 법을 취하는, 아주 고급스런 선법으로 만들어서 취하는 문화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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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3.12
타고난 생짜 그대로의 날 마음을 가지고 뭘 하겠다고 덤벼들고 욕심을 부리고 해봐야 탐·진·치 삼독심이 난무하는 마당밖에 안돼요. 그런 마음을 제3의 마음, 푹 삭힌 마음으로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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