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삭혀 제3의 맛으로
Paragraph 2.2.1
푹 삭혀 제3의 맛으로
물리적 작용과 화학적 작용의 비교, 또 음식에서 시작해서 소리로 이어간 것은 필자의 재주입니다. 대단히 적절한 비유라 하겠습니다.
좋은 음식,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면 거기에 반드시 많은 좋은 재료가 들어가야 되고, 많은 시간과 많은 손질이 들어가서 참으로 고급스런 맛을 우려낸 것이라고 할진대, 우리 민족은 날 것 그대로 먹지 않고 가급적이면 삭혀서, 푹 삭혀서 먹습니다. 푹 삭혀서 제3의 맛을 만들어 먹으니 몸에도 좋고 넘기는 과정에 미감도 좋으니, 우리의 음식 문화가 대단히 고급스럽다는 데는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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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2
삭혀서 먹는 음식 덕분인가, 우리 민족의 특질도 비슷합니다. 삭힌 음식만큼 박력도 떨어지고, 육체의 야만스런 정력 면에서도 그렇게 우수해 보이지 않습니다. 몽고 민족이 원래 체질적으로는 세계 최강이라고 합니다. 추위, 더위 등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능력이 몽고족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건만 한국인들은 야한 침략적 근성이 없이 부드럽습니다. 그런 특질이 음식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생짜로 야한 음식을 먹는 민족과 고급스럽게 삭힌 음식을 먹는 민족과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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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3
우리는 소리도 역시 화학적으로 승화시켜서 제3의 소리로 만들어 듣습니다. 이날치가 말한 바의 음악 감각, 혹은 음악 논리랄까 음악평이 나올 정도의 고급스런 음악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듣기에 이날치의 말은 예藝의 극에 도달한, 혹은 예를 넘어선 이야기 같습니다. 예의 영역, 창唱의 영역을 넘어서 도道의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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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4
서양 사람들은 문을 꼭꼭 닫아놓고 자연의 소리는 차단된 가운데 일부러 좋은 소리를 만들어서 듣는다 이거예요. 아주 아름답고, 그야말로 아이스크림 맛처럼 혀에 감치는 그런 소리를 만들어서 듣습니다. 그런데 집 속에서 살면서도 자연의 소리를 누리는 우리 한옥의 가옥구조를 생각하면 이분의 혜안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제 아파트 사는 분들은 모릅니다. 그러나 창호지 하나로써 자연을 접한 채로 살면 이 말들이 참 와 닿습니다. 창호지는 매우 희한한 종이입니다. 외풍 차단하는 효과도 탁월해서 종이 한 장인데도 바깥 온도하고 10여 도 정도 차이를 만들어낼 겁니다. 그런 보온 기능도 하지만 바깥소리도 거의 빠짐없이 전해주지요. 특히 자연의 소리를 잘 살려서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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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5
사실 자연의 소리보다 아름다운 소리는 없거든요. 자연 속에서 들으면 사람 소리처럼 야하고 거슬리는 게 없습니다. 조용한 산사에 있다 보면 어디서 사람소리가 나는데, 그 소란스러움이 바람 소리나 새소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냥 신경에 거슬리고 긴장시키는데, 그런 사람 소리를 아무리 갈고 닦아 미성美聲을 만들어봤자 자연의 소리 앞에서는 하나의 반역입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자연의 소리를 차단한 채 사람 소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듣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게 만족스럽지 않다는 말입니다. 물리적으로 와 닿는 소리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듣는다’ 이 말이 참 멋집니다. 제3의 소리로 만들어서 잠재된 스트레스를 안에서 중화하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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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6
즉 날것 그대로를 먹고 듣고 즐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일찍이 날것 그대로를 취하는 방식을 극복하는 데 주력해온 문화 민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웬만한 건 다 익혀서 먹고, 게다가 제3의 것으로 화학적으로 변형시켜서 취하는 대단히 고급스런 문화를 누려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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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7
앞서 인용한 글이 타당하다고 여기며 평소에 제가 생각하던 우리 민족의 ‘도인적 기질’을 떠올렸습니다. 소리를 일단 난마亂麻처럼 갈기갈기 찢어서 그 찢어진 가닥가닥을 빗질해서 가다듬고 댕기 땋아 내리듯 제3의 소리로 땋아 내린다는 것은 도의 경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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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2.2.8
저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우리 민족 찬양론자도 아닙니다. 부처님 법을 만난 이후로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관념이 사실상 모호해졌습니다. 왜? 내가 전생에 일본에 살았을 수도 있고, 중국에 살았을 수도 있고, 그 다생 겁을 어느 동물 세계에도 내 집처럼 드나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요. 만일 인간 몸을 많이 받았다면 인간 세계 어디라고 못 갔겠나 싶습니다. 지금 여기 몸 받았다고 해서 ‘이게 내 나라고 내 겨레다.’ 하면서 한국 지상주의로 간다면 다음 생은 또 어떻게 하겠어요? 딴 데 몸 받아 태어나서 그곳 지상주의로 간다면 이 얼마나 가소로운 짓입니까. 그렇다고 애국심의 효율성이랄까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내가 어떤 나라에 태어나서 어떤 문화에 접하고 있는 현상마저도 법으로 보는 눈을 갖춰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 종교다 남의 종교다 논하고 싶지도 않고, 내 땅이다 남의 땅이다 논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유난히 고급스럽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고급스러운 우리 문화가 다름 아닌 불교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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