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기 달렸다
Paragraph 17.5.1
내 하기 달렸다
질문: 저는 절에 다니면서 불교공부를 하고 있지만 남편이나 다른 식구들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남편의 생각을 좀 바꿔서 함께 불교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작은 욕심을 부렸는데, 결과적으로 지난 삼 년간 갈등만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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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2
스님: 그것은 해보아도 소용없는 일을 억지로 의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부인이 자기 남편을 어떤 사람으로 바꾸어 보겠다고 할 때, 한 번 두 번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갈등만 일으키고 말지요. 그건 원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그 사람대로 다겁생多劫生을 쌓아온 업業이 있고, 그 결과로서 금생에 몸을 받아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있고 그 사람의 주장이 있고 또 그 사람의 복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걸 다 무시하고 그 사람 한번 바꾸어보겠다고 한다면 내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될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마음대로 안 되고, 자기 자식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자기 남편인들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가당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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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3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 법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모두들 다겁생을 살아온 사연을 가진 존재니까 가급적이면 그 사연을 존중해 주라는 겁니다. 나나 자식이나 남편이나 내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나’ 자신이지요. 식구라 해도 사람은 각자 사연이 있으니까 내가 함부로 개입할 일이 아닙니다. 그나마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면서 ‘나’ 이외의 사람에 대해서는 기대와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남편일지라도 내 마음대로 만들겠다.’ 하는 것은 작은 욕심 정도가 아니라 지나친 욕심입니다. 아니, 내 마음대로 상대를 주물러서 내 생각대로 만들겠다는 것은 욕심이 지나친 것은 물론이고 될 성싶지 않은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지요. 그걸 이제 법답게 작은 욕심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욕망은 최소로 줄이십시오. 내가 무려 삼 년을 바쳐서 노력했는데 그 성과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대에게서 변화가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감사하고 만족하십시오. 이것이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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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4
무슨 일이든 내 기대만큼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 일을 방해하는 업을 자신이 그만큼 많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남이 막는 게 아니라 누구든 자신의 업이 막지요. 가령 자신의 향상을 위한 씨앗을 심으려고 이십 센티미터를 파서 심었다 합시다. 그런데 씨앗이 뚫고 올라오다가 중간에 힘이 부쳐 못 올라 올 수도 있지요. 우리가 새로운 무엇을 하나 키우려는데 과거생의 업 때문에 나머지 십 센티미터의 극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새로 뭔가를 키우는 것도 내 업이고, 극복하지 못한 십 센티미터 그것도 내 업입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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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5
그렇긴 해도 향상의 씨앗을 키우는 걸 포기할 일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얼마라도 노력해서 향상의 싹이 올라와야지요. 불교에서는 심지어 ‘일체가 내 하기에 달렸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바깥을 쳐다보지 말고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향상하면 향상하는 만큼 고마운 줄 알면서 꾸준히 노력해 가면, 그것이 나중에 해탈·열반의 불씨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허구한 날 키워온 것이 욕심인데, 그 욕심을 불교공부에까지 끌어들여서 성급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욕심을 부리면, 그건 부처님 법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아닙니다. 바깥에 있는 요소들 역시 모두 제대로 중심 잡지 못하고 어지럽게 나부끼고 있기 마련이어서, 우리가 누구나 마음공부를 하려고 할 때는 이런 바깥 요소들이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이해를 못하고, 자식들이 알아주지 않고, 부모까지도 못마땅한 눈으로 볼 수 있겠지요. 거기에다 대고 ‘오늘 절에 가서 좋은 법문을 들었는데 당신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상대를 가르치려고 들면, 오히려 내 마음공부 길이 자꾸 막히게 됩니다. 그건 어설프게 공부하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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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6
반면에 공부를 제대로 해서 자신의 공부한 것을 감추고, 자기 덕을 감추고, 남모르게 베풀면 뜻밖에도 그 완강하던 저항 세력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응원하는 힘으로 바뀔 수 있지요. 이 세상은 모든 요소들이 다 불안하고 흔들리고 있는 만치 내가 확고하게 좋은 길을 걸으면 그런 반전의 기회가 다투어서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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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7.5.7
일체가 내 하기에 달렸습니다. 내가 이기적으로 움직이면 남도 이기심이 발동합니다. 내가 내 중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버리려고 노력하면 남도 이기심을 가지고 있다가도 쑥스럽고 멋쩍으니까 이기심이 줄어들게 됩니다. 더욱이 내가 진실로 정법正法을 꾸준히 지향해서 법의 향기를 풍기는데, 어떻게 비린내를 계속 풍기면서 염치없이 굴겠습니까. 그게 법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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