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혜 구족과 중도中道
Paragraph 16.5.1
계·정·혜 구족과 중도中道
우리가 개인적으로 계·정·혜를 추구하듯이 인류는 세 가닥 문명으로 살면서 문화권에 따라 동양은 계에, 남양은 정에, 서양은 혜에 치중해서 공부해 왔지요. 어쩌면 그 문화권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따로따로나마 계·정·혜를 추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과 상황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가 과연 정계正戒, 바른 계를 공부했을까요? 정정正定, 바른 정을 공부했을까요? 정혜正慧, 바른 혜를 공부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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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2
먼저 동양의 계戒 문화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인류가 계율 쪽에 기울인 노력의 가장 발전된 모습 중 하나가 성리학이라 볼 수 있지만, 그 극단적 양상의 폐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권이 진정 정계正戒, 바른 계 공부를 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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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3
그리고 인도의 정定 공부를 생각해 보면 인도에 정은 있는데 과연 정정正定, 바른 정이 있는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도에는 정을 닦는 사람들이 도처에 흔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후 풍토가 사람과 축생 전부를 몽롱한 상태로 몰아넣고 모든 것이 신격화되고 종교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대개 뭔가 환상 속에 있는 정일지는 모르지만 바른 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인도에서 정을 설하시면서 왜 정정, 바른 정을 강조하셨는지 인도 현실에서 볼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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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4
서양이 추구한 지혜도 봅시다. 이는 단순히 추상적 지혜에 머물지 않고, 바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 힘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핵무기의 파괴력이 너무 강하니까 인류를 전멸시킬 수도 있고, 건설과 개발의 힘이 너무 강하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덩어리가 무방비로 오염되고 침탈되고 약탈되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지구가 과학 기술 앞에 너무 왜소해져서 옛날에 생각하던 ‘무한의 대지’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힘은 가공스러워져서 이제는 오히려 지구가 인류 앞에 전전긍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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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5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은 힘이다’ 했지요. 아는 것이란 지혜를 의미하는데 그러나 서양인에게 아는 것은 곧 힘입니다. 힘을 추구하는 쪽으로 지혜의 가닥을 잡아온 것이 서양입니다. 그 지혜는 불교에서 말하는 잘못된 혜慧입니다. 혜는 혜인데 잘못된 혜인 것이지요. 핵폭탄을 만들어 놓고 서로를 협박하고 있는 게 잘못된 혜이지, 그게 바른 혜입니까? 그 서양의 잘못된 혜가 그물망처럼 이미 지구촌을 덮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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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6
지식을 발전시킨 측면에서는 인류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성공했어요. 그 힘이 너무 강하다는 말입니다. 일종의 혜인 것은 분명한데 극단에 치우쳐서 중도中道를 상실한 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불행하게 만드는 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하고 고뇌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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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7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동양인은 계戒를 발전시키는 데 소질도 있고 남다른 재능도 있고, 그 계가 사회 체제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정定과 혜慧를 같이 구족하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인도는 정의 능력은 탁월하고 또 자연도 도와주는데, 혜나 계가 제대로 자리 잡는 데는 실패했다. 서양 사람들은 혜를 발달시키는 데 공전의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결과 오늘날 인류가 이렇게 비극적이고 위험천만하게 된 것은 계와 정이 없는 혜로 치우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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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8
오늘날 인류는 그야말로 일찍이 없던 대위기에 접근해가고 있습니다. 낭떠러지를 향해서 다가가고 있습니다. 잘못된 지식, 잘못된 지혜 때문이요, 또 그 힘 때문입니다. 그 힘이 너무 크고 그 힘 앞에 개개인의 존재는 너무나 미약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문제의 근본 소재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 아닙니까? 이걸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그 해결을 위해서 어떤 접근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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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9
인류 전체로 보면 향상을 위한 공부를 해 왔습니다만 계·정·혜 삼학을 따로 따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동양은 계에 치중해 왔고, 인도는 정에 치중해 왔고 서양은 혜에 치중해 왔지요. 요컨대 계 공부하는 사람은 계에, 정 공부하는 사람은 정에, 혜 공부하는 사람은 혜에 치우친 결과입니다. 계를 위한 계로 극단화되었고, 정을 위한 정으로 극단화되었고, 혜를 위한 혜로 극단화되어서 그 어디에도 ‘중도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바로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극단화 문제의 근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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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0
이렇게 볼 때 계·정·혜는 반드시 구족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구족 사상인데, 그 내용의 핵심은 바로 중도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부처님이 설하신 계·정·혜 삼학이 구족된 중도사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길로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중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실천도로서 중도는 결국 계·정·혜 삼학을 구족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계·정·혜를 빠짐없이 다 갖추어야 하고, 뭔가 빠지면 빠진 만큼 불완전해서 원만하지 않으며 모가 나고 치우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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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1
중도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계나 정이나 혜는 중도에 이르기 위한 방편입니다. 부처님은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중도를 말씀하시고, 팔정도八正道,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사성제四聖諦 즉,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계·정·혜는 중도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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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2
불교는 계를 기본으로 합니다. ‘계가 없는 정은 올바른 정이 될 수 없다.’고 부처님이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정이 없는 혜는 올바른 혜가 아닙니다. 요컨대 혜는 반드시 계와 정과 함께 서로 도와야 합니다. 계·정·혜가 따로따로 분리되면 의미가 없고 세 가지를 구족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중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계·정·혜 삼학, 즉 팔정도를 구족함이 중도이고, 이 중도를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 불교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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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3
그런데 불교의 역사도 인류 역사와 마찬가지로 이 구족함을 허물어뜨리는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부처님 가르침을 점점 단조화單調化시키면서 ‘정定만 잘 하면 돼, 염불만 하면 돼.’ 이런 식의 극단화로 흘러갔습니다.
이런 단조·단순화를 저는 ‘유唯 자 돌림’이라고 합니다. ‘오로지 이것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지요. 유물론唯物論, 유일신론唯一神論처럼 ‘오로지 유唯’ 자가 붙은 게 얼마나 많습니까. 불교사에도 유식론唯識論이라는 게 나오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유심도 나오고, 유 자 돌림이 많습니다. 화두 하는 분은 오로지 화두, 위빳사나 하는 분은 오로지 위빳사나라는 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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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4
부처님 시대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려 노력하다 보니 ‘유唯 자 돌림’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일부러 잘못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근기에 맞추어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거만 하면 다 돼, 깨치면 그만이야, 깨치면 다 하나야.’ 바로 그런 사고방식으로 불법 공부도 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뒤집어 말하면 ‘부처님도 법도 삼보도 필요 없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듯 유唯 자가 나와 퍼질 때마다 인류가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고 폐단을 낳기 때문에 문제는 참으로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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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5
중도가 이처럼 중생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을 잘 아시면서도 부처님은 중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만’이면 된다는 유唯 자 식으로 치우치는 그 밑바닥에는 지적 나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면서 그걸 열심히 하는데, 그것은 계·정·혜 구족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나태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계·정·혜를 구족해야 하며, 어떻게 구족해야 하는가?’를 생각조차 하지 않지요. 그러나 사정이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바르게 공부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계·정·혜의 구족함에 대해 물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근본을 파고드는 성실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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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6
요즈음 위빳사나 수행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하나의 ‘유 자 돌림’의 오류입니다. 위빳사나는 혜와 깨달음 쪽으로 자꾸 치우치다 보니 삼학을 구족하지 못하고 어느덧 기법적인 접근이 되어갈 위험성이 농후합니다. ‘오로지 위빳사나!’라면 불균형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프로그램이 되고, 상품이 되는 겁니다. 그 어느 것도 계·정·혜 삼학을 구족하지 못하면 치우칠 수밖에 없고, 치우치면 바른 길로 갈 수 없지요. 우리가 부처님 제자 된다는 것은 정定만 배운다는 게 아닙니다. 정만 닦는다면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다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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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7
불교는 중도를 내세움으로써 인간 완성인 해탈·열반의 경지를 제시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불교는 종교의 영역을 탈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불교의 핵심에 중도가 없었다면, 인류의 다른 노력들처럼 불교도 이데올로기나 종교의 범주를 탈피하지 못했을 겁니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인류 문명 앞에 불교가 제시하는 길은 바로 중도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중도로써 계·정·혜 각각에 치우쳤던 인류의 정신을 조화롭게 결합하고 차원을 높여 낭떠러지로 다가가는 인류를 들어 올려서 바야흐로 더 큰 향상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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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8
지금이야말로 이천오백 년 전에 설하신 부처님 가르침이 지구촌의 전 인류에게 비로소 의미 있는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법을 설하신 이래로 전 인류가 불법을 수용할 만큼 성숙하고 올바로 향유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이른 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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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19
부처님 나오시고 직계 제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잘 받아 실천하던 것은 시간적으로도 짧거니와 공간적으로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은 그야말로 지구 역사상 이례적인 예외 사항이었지 인류 전체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에서 잠시 드높은 광휘를 발휘했던 불법은 인도화해 버리고,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세속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부처님 법이 진리의 모습 그대로 인류의 가슴에 다가와 인류를 진정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후대의 일로 보류되어 왔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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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5.20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인류가 문화권별로 여태까지 따로 해온 계·정·혜 공부를 오늘 이 현실에서 어떻게 통합하여 정말 필요한 삼학으로 살릴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인류 전체가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계·정·혜 삼학을 추구하긴 했는데, 모두 치우친 계, 치우친 정, 치우친 혜가 되어 오늘날을 이렇게 암담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인류가 계·정·혜 삼학을 올바로 구족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지금 이 지구에서 사는 존재 의미를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계·정·혜를 구족하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숙하는 길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류는 훌륭한 공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이 법이 중흥하는 시대’, 즉 부처님 원래 가르침을 되살리는 법의 시대를 구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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