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혜 문화권
Paragraph 16.4.1
계·정·혜 문화권
불교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가르칩니다. 계·정·혜는 불교공부의 대요大要입니다. 삼학은 팔정도八正道를 세 가지로 정리한 것이라고 하지요. 팔정도의 여덟 가지를 크게 나누면 삼학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우리 생각의 무대를 조금 넓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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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2
개개인이 삼학을 공부하고 그래서 향상을 성취한다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인류라는 집단은 어떤가, 인류도 공부하고 향상하는 게 아닌가, 인류도 문화권마다 공부하고 향상하는 한 단위가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인류는 어떤 공부를 해왔을까요? 아마 인류도 계·정·혜 삼학을 닦아오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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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3
지구상 인류의 공부 전통은 세 가닥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하나가 우리가 사는 동양東洋이지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 문화권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도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인데, 그걸 우리가 남양南洋 문화권이라고 불러봅시다.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그 공부의 특색에 있어서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西洋입니다. 서양은 이집트 문명도 바빌로니아 문명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유태 문명도 그리고 그리스 문명도 있었습니다만, 그것을 ‘지중해 문명’으로 뭉뚱그려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이 문화는 기독교와 서구 사상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으니까, 지금의 미국을 위시한 남·북미 대륙이나 호주까지도 포함하겠지요. 그걸 서양 문화권이라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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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4
마야 문명처럼 과거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건 빼고, 지금도 의미 있게 인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문화권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동아시아의 동양권, 인도양 중심의 남양권, 지중해 중심의 서양권. 결론부터 말하면 동양, 남양, 서양의 순서 꼭 그대로가 계·정·혜 삼학을 공부했더라는 말입니다.
우선 우리 동양 문화부터 봅시다. 인도에서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형식주의, 격식주의, 구태의연하고 낡아빠진, 그래서 발전에 지장만 있고 서구에 뒤떨어지게 만든 원흉’이라고 매도한 격식과 체면 차리는 것,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인류의 한 부분인 동양이 계戒를 공부한 것이더라는 겁니다. 요컨대 동양 문화의 틀 속에서 열정껏 추구해 온 것이 계 공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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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5
그렇게 볼 때 동양은 계라는 가치관을 대단히 높이 보고, 계 공부를 열심히 한 문화권입니다. 계율戒律의 측면에서 동양 문화권은 불교를 품어서 그 나름의 체계를 종합적으로 이루었습니다.
동양 문화권은 유교가 단적으로 대표하듯이, 또 조선의 성리학이 우리에게 잘 보여주었듯이 계의 측면에서 지구상에 일찍이 나타났던 어떠한 문화보다도 탁월합니다. 불교 용어로 말하자면 율의律儀, 계율과 의범, 이 측면에 있어서는 동양이 단연코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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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6
중국의 성리학은 사실상 유교와 불교의 합작품입니다. 유교 전통에서 불교를 받아들여 체계화한 것이지요. 성리학에서 절정을 이룬 그 노력을 그냥 ‘중국적인 것’으로 치부해서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닙니다. 성리학은 불교의 눈으로 유교를 재해석한 것이고 동양인의 불교 수용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산이자 정화입니다. 그래서 계의 측면에서는 어느 타 문화권에서의 시도보다 성공적이었다고 보입니다. 인류 향상을 위한 노력의 한 가닥으로서 계율 공부라는 측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룬 한 성과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계 공부는 동양인이 우등생이었다고 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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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7
인도는 그 땅 자체가 종교적이지요. 기후 환경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정신적 활동이 종교적으로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 같았습니다. 인도인들은 모든 것이 신이고, 신의 뜻이라 보지요. 그 사람들이 신을 믿는 건 단순한 종교가 아닙디다. 그건 삶입니다. 대부분 그 척박하고 메마른 인도 땅에서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보통 근기의 중생들에게는 삶의 방편이기도 하지요. 그 사람들이 신을 좋아하고 종교적 취향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못 살게끔 되어 있으니까 신앙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요는 제가 받은 인도의 첫 인상은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모두 한데 어울려 같이 공존하면서 조금도 위화감이 없이 지내는 특수 세계이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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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8
여러분, 힌두교에 춤추는 시바 신상이 많이 있잖아요? ‘춤추는 신’이라기보다 오히려 ‘춤추는 마아야māyā ’가 아닌가 싶어요. 마아야māyā라는 말은 허깨비, 환幻이란 뜻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춤춘다’는 게 참 공감이 가고, 인도를 ‘춤추는 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어울려 혼연일체를 이루면서 어딘가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데, 그 빠져들어 가는 곳, 그게 저는 종교라고 보았습니다. 인도의 자연 그대로가 종교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나 할까요. 그런 인도 대륙에서 종교와 떨어져 자신을 가누고 산다는 것은 특별한 노력이 없으면 안 될 일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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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9
부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定 공부는 부처님이 처음 가르치신 게 아닙니다. 부처님 나오실 때 이미 정 공부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었지요. 정 공부는 모헨조다로 시대부터 인도 원주민들 사이에서 내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도 처음 출가해서 정을 배웁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자마자 스승들을 찾아가셔서 최상승의 정으로 치는 무색계無色界의 제일 높은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는 정을 이루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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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0
그런 인도적 배경에서 왜 부처님이 유독 빤냐paññā [般若,慧]와 사띠sati, 즉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강조하셨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정定 문화가 뿌리 깊은 인도에서는 환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바른 마음챙김인 사띠의 필요성이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띠를 강조하신 것은 그 뭔가 자꾸 몽롱하게 젖어드는 인도의 종교적인 정 문화 분위기 속에서 정신을 딱 차리고 허깨비, 환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이나 바깥 경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라는 가르침 아니겠습니까. 사띠는 정신 차림, 바른 마음챙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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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1
부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빤냐[慧]와 사띠는 인도에서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定 공부를 할 때 반드시 바른 견해[正見]를 갖추고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통해 바른 정, 즉 바른 집중[正定]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도의 정 문화 풍토를 보면서 지혜와 바른 마음챙김이 있는 바른 정定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이 또 다른 ‘허깨비, 환’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그야말로 사띠를 통한 바른 정 공부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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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2
이제 서양을 생각해보면 그곳은 현재 과학 기술로 대표되는 ‘혜慧의 문화’입니다. 분명 과학 기술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넓은 의미의 혜로부터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 ‘혜의 문화’가 계와 정의 두 문화를 누르고 지배하는 것이 현재 인류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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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3
아카데미즘의 전통 면에서 보아도 사실상 서양 학문 분야가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 동양에도 동양 나름의 논리학과 학문 전통이 있습니다만, 서양에서는 그걸 ‘유사 과학’ 정도로 봐왔습니다. 모의 과학, 준 과학이라는 거지요. 사실상 눈에 보이는 과학적 결과를 내는 측면에서 보면 서양의 논리학과 사고방식이 압도적입니다.
서양의 논리는 아카데미즘의 전통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그것이 옛날에는 철학philosophy이라는 이름으로, 그 다음에는 과학science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기술technology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컴퓨터와 정보 기술 같은 고도의 테크놀로지가 온 지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식 면에서 고도로 발달한 서양 과학 기술이 지구를 덮고 있는 형국입니다. 인도에 가면서 긴 시간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는 현대 과학 기술의 정화이지요. 대단한 기술의 집합이자 총제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고, 이게 바로 신통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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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4
여러분, 단숨에 먼 거리를 가는 축지법이나 가부좌한 채로 허공을 나는 소위 신통력 이야기를 들어보았지요?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신통력을 꿈꾸고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비행기를 타보니까 신통력 경쟁에서는 서양이 압도적 우세이고 이미 그건 판정승이 났다고 하겠습니다. 비행기가 그 엄청난 무게의 짐을 싣고 가뿐하게 떠서 구만 리 장천을 대붕처럼 나는데 감탄이 절로 나더군요. 이것이 바로 지혜의 소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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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6.4.15
남양권의 인도인들이 선정을 통해서 꿈꾸고, 또 동양권 사람들이 도술을 통해서 꿈꾸던 신통력을 일단 물리적인 측면이긴 하지만 서양에서 이루어냈다는 겁니다. 세 문화권이 세속적인 오신통五神通, 즉 천안통天眼通·천이통天耳通·숙명통宿命通·타심통他心通·신족통神足通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는데, 현재까지는 서양 문화가 앞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혜가 지금 세상을 지배할 정도로 대단히 발달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양의 과학 기술은 인류가 추구해 온 지혜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요컨대 동양 문화권은 계를, 남양 문화권은 정을, 서양 문화권은 혜를 각각 공부해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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