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변천사는 바깥의 도전에 대한 대응사
Paragraph 15.5.1
불교 변천사는 바깥의 도전에 대한 대응사
여러분이 불교사를 읽을 때 그냥 불교 내부사로서만 읽기 쉽습니다. 불교에서 직계제자들 시대, 그 다음에 부파 불교시대, 소승 불교, 대승 불교 이런 논의를 계속하는데, 그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한, 타당한 태도일까요. 불교가 여러 가지 변천을 겪게 되는 가장 큰 원인, 즉 그때그때마다 변천의 동기를 부여하고 또 제약하고 또 어떻게 보면 불교가 대응하게 되는 그 도전, 그 근본 원인은 오히려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불교의 변천을 살펴볼 때 육사외도六師外道,1 유물론 등이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불교와 브라마니즘과의 관계입니다. 실제로 우파니샤드로 대변되는 브라마니즘과 육파 철학六派哲學2을 위시한 브라마니즘의 후속편인 힌두교3와 불교와의 상호 접촉 관계, 이것이 불교 변천에 있어 가장 큰 동인動因이며, 자이나교 등 육사외도는 접촉은 많았겠지만 부처님과 불교교단에 크게 영향을 끼칠 정도는 못되었으리라 봅니다. 불교가 힌두교 등 브라마니즘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나타난 모습이 부파 불교4 같은 것입니다. 알다시피 힌두교는 부처님 이후에 생긴 겁니다. 불교를 브라마니즘과 그 후신인 힌두교와의 관계 면에서 살펴보아야만 불교가 왜 그때 그런 일을 하게 되고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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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2
이런 주제는 그 방면 전공자가 아닌 제가 함부로 용훼할 일이 아니지만 문제 제기 차원에서 학자들의 논의를 담은 2차 문헌 자료들에 입각하여 자유롭게 사유해 보고자 합니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불교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심에 의지합니다. 부처님의 천재성은 인도 역사에 참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법도 당연히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처님이 법을 설하시기 위하여 논리 정연하게 다듬으신 빠알리 어법 역시 인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산스크리트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산스크리트어는 부처님 후에 나온 겁니다. 그 이전부터 부처님 시대까지 쓰던 베딕 산스크리트어라는 것이 있었는데, 브라만들이 신을 예배 찬탄하고 희생제를 거행할 때 쓰던 언어라 특수층에 의한 특수 용도의 특수 언어입니다. 특수 언어 나름의 어법이 당연히 있었을 텐데, 어법이란 것이 원래 언어의 질서인 만큼 따라서 그 질서는 보편성을 지향해야 하지만, 베딕은 신과 브라만들 사이에만 통용되어야 하므로 발음이나 문법도 자연히 신비롭고 난해해서 아무나 함부로 끼어들지 못하도록 막아야 되었겠지요. 따라서 고대 인도의 문헌인 《베다Veda》나 《우파니샤드Upanishad》는 일반인을 향한 불교 경전인 니까아야nikāya의 빠알리어 등과는 문법 체계에서 같을 수도 없고 또 같아서도 안 되겠지요. 사실 빠알리 경전은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 인간의 소리로, 그것도 일반 대중을 향하여 조리 있고 논리 정연하도록 어법을 다듬으신 게 분명하며, 이 점이 특히 당시 지식 사회의 확대 팽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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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3
부처님이 직접 설하시고 아아난다가 암송하여 전한 것으로 전해지는 빠알리 오부五部 니까아야5의 특성 중에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논리성이 눈을 끕니다. 그런데 삼장三藏 중에 논장이야 물론 부처님 직설이 아니고, 율장律藏의 경우도 어투와 어법은 니까아야와 비슷한데, 그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율장은 딱딱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또 어떤 점에선 마치 사법부의 판례집 같고 거기선 부처님도 사생 자부의 면모보다는 엄격한 판사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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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4
삼장 중에 경장經藏의 《장부》 앞부분의 계온품戒蘊品 10개의 경經도 계戒를 설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처님의 계에 대한 원래의 입장이고, 당시 교단에 입문한 사문들의 진지한 구도 자세를 상상해 볼 때 율장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교단이 흥성하여 흐트러진 기풍이 생겨나기 시작한 후에 비로소 제정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경장의 경우 후대의 첨삭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불설의 근본을 훼손할 만큼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 정도면 부처님의 원음이라고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이 경장을 통해 이로정연理路整然하게 논리 체계를 세우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도에서 참다운 의미의 ‘문법’의 시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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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5
무엇보다 부처님 당신이 지혜로써 담마를 전하기 위하여 제일 고심한 게 어법, 즉 문법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문법을 만들고 다듬음으로써 아주 정연하게 의사 표시를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브라만들의 주먹 쥔 손, 핵심을 주먹 속에 감추어 둠으로써 신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던 방식과 달리,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법의 소식을 알아차리게 만들려는 활짝 편 손이자 넘치는 자비심의 발로였지요. 그것이 인도에 매우 넓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당시 엘리트인 많은 브라만들이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귀의해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브라만 계급이 크샤트리아 계급인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쨌든 놀라운 이야깁니다. 카스트가 지배하는 그 계급사회에서 브라만들이 자기네보다 낮은 계급으로 치부하는 크샤트리아 계급인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부처님의 감화력이 위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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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6
요컨대 부처님이 문법을 만드시고, 그걸 수많은 브라만들이 와서 배웠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불교승단에 귀의했던 많은 브라만들이 퍼져나갑니다. 승단에 남아 있거나 아니면 속퇴를 하고 브라만 세계로 귀속하여 활약하게 됩니다. 그들이 무엇을 제일 먼저 시작했을까요? 특수 언어를 위한 문법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언어문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런 관점이 학술적으로는 좀 문제가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일단 생각해봅시다. 부처님이 너무나 좋은 법의 논리 체계를 문법적으로 세우셨으니까, 비법秘法을 벗어난 개방문법에 목말라 있던 브라만들이 그걸 배워 돌아가서 그러한 문법을 자기네 언어에 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요. 마치 여기 빛나는 광명이 있는데, 광명에 쏘인 사람이 가서 그 광명 소식을 전하고 활용하는 것과 같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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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7
그래서 빠알리어 문법에 영향을 받아 드디어 빠아니니Pāṇini의 산스크리트어 문법(기원전 350년경)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요. 빠아니니는 부처님보다 후대의 사람입니다. 빠아니니 문법이 나오고 난 후, 문법의 틀에 엄격하게 얽매인 ‘빠아니니의 산스크리트Pāṇinic Sanskrit’,6 소위 고전 산스크리트어Classic Sanskrit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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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8
그 산스크리트어를 가지고 브라만들이 《라마야나Rāmāyana》니 《마하바라타Mahābhārata》니 하는 오늘날까지도 인도 힌두 문화의 기축을 이루는 문학 작품을 다듬습니다. 부처님 영향을 받아서 문법까지 갖추게 된 산스크리트어라는 언어가 생겼으니까, 그 언어를 가지고 그야말로 그럴싸하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 거지요. 브라만들이 문학 작품을 잘 다듬어 활용하니까, 그 굉장한 감화력에 불교에 쏠렸던 일반 대중들까지 따라서 돌아가는 회귀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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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9
지금도 인도에 가보면 대학교수들이 주로 브라만입니다. 정부에서 각 계급에 고루 배분하려 법으로까지 노력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브라만들의 사상적, 교육적, 종교적인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그들이 종래의 닫힌 언어에서 벗어나 열린 언어로 이끄니까 대중들도 돌아가게 되지요. 《라마야나》나 《마하바라타》가 불교의 《자아따까Jātaka》보다 훨씬 재밌거든요. 《자아따까》는 단편 모음인데 비해 《마하바라타》는 재미있는 장편 대하소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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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10
그 결과 브라마니즘이 불교의 영향을 엄청나게 흡수하여 자기 갱생의 근원으로 삼아 부흥 운동이 일어나지요. 마침내 육파 철학六派哲學이 나오는데, 이 육파 철학 같은 것은 논리적 기본이 없으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가령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던 요가파의 경전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로 미흡한 면이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잘 다듬어져서 불교 니까아야처럼 근사한 경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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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11
이처럼 브라마니즘의 새로운 갱생이 낳은 것이 바로 힌두이즘입니다. 산스크리트어라는 언어도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에 따라 문학과 철학, 마침내는 힌두교라는 종교도 만들어졌고, 그리하여 인도의 문화 풍토가 결정적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불교에 치명타를 입히게 됩니다. 불교에 귀의했던 브라만들이 대거 돌아감으로써 불교는 엘리트 빈곤에 시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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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12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불교가 쇠퇴하지요. 쇠퇴해가는 과정에서 승가의 계戒도 무너지고, 학문적인 창조성도 떨어지게 되면서 소위 불교의 여러 말기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러자 이제는 불교 내부에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운동이 일어나지요. 그 운동들로 인해 이른바 부파 불교部波佛敎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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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13
이런 입장에서 불교사를 다시 한 번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어떻게 보는가, 그 관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파 불교니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데, 이 모두가 사실은 브라마니즘의 도전을 당면하여 불교의 쇠퇴를 막아내려는 참으로 안타까운 노력에서 나온 거라고 봅니다. 그러다 대승 불교까지 나왔으나 결국은 기본적으로 엘리트 충원이 안 되니까 인도에서 불교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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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5.14
그 말은 다름 아니라 아비담마의 창조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아비담마란 부처님이 설하신 법, 담마를 변천하는 세계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체계화해서 어떤 언어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노력입니다. 이러한 논리의 분상에서 보면 아비담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 직후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비담마가 바로 논장 칠론七論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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