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Dhamma의 가르침인 불교
Paragraph 15.3.1
담마Dhamma의 가르침인 불교
앞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종교적 태도를 피해야 한다고 했지요. 불교가 종교 아니면 무엇인가? 불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 불교는 법, 담마Dhamma를 가르칩니다. 곧 담마는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방금 법法, 담마Dhamma라는 말을 썼는데, 빠알리어Pāli로는 담마Dhamma이고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Dharma이지요. 다르마는 주로 ‘의무’를 뜻하는데 그러면 담마는 무엇인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전에도 이 자리에서 몇 번 소개했지만, 오죽 어려웠으면 유명한 불교학자인 영국의 곰브리치 교수는 담마가 36가지 뜻으로 다양하게 쓰인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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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3.2
그 담마, 그것을 깊이 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다고 그 어려운 상태를 그대로 둘 수는 없으므로 저는 일단 담마를 이렇게 규정해 봅니다. 요컨대 법, 담마란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부처님 당신이 깨달으신 지혜의 소식을 중생이 이해할 수 있는, 중생이 쓰는 언어로 담아 낸 진리의 소식’입니다. 부처님은 붓다, 깨달으신 분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으셨는가? 진리를 깨달으셨습니다. 진리를 깨달으신 붓다가 당신이 알게 된 그 진리의 소식을 중생들에게 전하려고 나서신 것 아닙니까. 어떻게 중생들에게 전하느냐. ‘내가 이러 이러한 것을 깨달았는데, 너희도 이것을 알고 깨달아라.’ 그러면 중생들이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가? 부처님으로서는 중생들이 알 수 있도록 뭔가 방법을 체계 정연하게 세워서 가르치셔야 될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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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3.3
담마의 영어 번역어 중에 가르침teaching, 사물things, 현상phenomena, 이런 말들이 있지요. 그런 것이 다 맞는 것 같아요. 모든 사물이 진리의 눈에서 보면 진리의 소식이고 진리의 표현입니다. 세상에 진리의 현현顯現, 진리의 표현 아닌 것이 있습니까. 산천초목이 다 진리의 소식 아닙니까.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작용, 심리적 작용도 어떻게 보면 진리의 소식이겠지요. 진리와 아예 관계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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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3.4
진리란 보편적이어야 하니까 만일 진리와 관계없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그때 그건 진리라 할 수 없는 거지요. 보편성, 그것도 완벽한 보편성이 진리의 특성 아니겠습니까. 여기서는 맞고 저기서는 안 맞으면 그건 진리가 아니지요. 그렇게 보편적이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것이 진리sacca이고, 그 진리를 담아낸 언어적 수단 방편이 담마입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담마는 부처님의 지혜 분상分上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이 법을 만드셨다고 표현합니다. 부처님 당신이 깨달으시고, 그 깨달으신 것을 당신 식으로 표현하시면서 그것을 담마라 하셨으니까요. 부처님이 담마, 법을 만드신 겁니다. 또 그 담마를 길이 보존하며 정확히 누리도록 법수法數로 엮고 문법으로 체계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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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3.5
따라서 그 법을 부처님 외에 다른 사람은 만들 수 없습니다. 빠알리 경을 자세히 보면 부처님 제자 중 지혜 제일이라는 사아리뿟다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 그 범주 안에서 그 뜻에 맞게 정확하게 법을 쓰기만 하지, 거기에 어떤 것도 자기 임의로 보태지는 않습니다. 어느 제자나 법을 쓸 때 다 그렇습니다. 목갈라나도 신통력까지 써가면서 모든 면에서 법을 활용하고 또 가르쳐요. 그러나 법에 어긋나거나 벗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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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3.6
대표적인 예로 그 유명한 고싱가 숲에서의 아름다운 장면1이 나오지요. 고싱가 숲에서 부처님의 큰 제자 대 여섯 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이 좋은 달밤에 이 경치에 어울리는 것이 어떤 사람일까? 각자 한번 소회를 말해 보시오.’라고 사아리뿟다가 제안했다지요. 그러니까 각자 자기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 그게 바로 이럴 때 가장 잘 어울릴 거라고 대답했다지요. 예를 들면 다문제일多聞第一 아아난다는 다문하는 그 사람이 제일 어울린다고 대답합니다. 각자가 그런 식인데 목갈라나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목갈라나는 아시다시피 신통제일神通第一아닙니까. ‘신통 제일 잘하는 사람이 어울리지요’라고 말 할 것 같은데, 목갈라나는 그러질 않고, ‘아비담마abhidhamma 문답을 하는데 조금도 담마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이 유창한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어울린다.’라고 말합니다. 왜 신통력 제일 잘 쓰는 분이 아비담마를 제일로 칠까요? 그리고 아비담마가 담마에서 어긋나지 않음을 제일로 칠까요? 아마도 아비담마야말로 진정한 신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걸 볼 때 부처님 제자들의 법에 대한 기본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부처님 제자들은 아비담마를 끊임없이 논하는데 조금도 담마, 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참 멋지고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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