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지혜
Paragraph 15.2.1
종교와 지혜
그럼 과연 불교와 종교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 당신은 앞에서 말했듯이 종교 창시자를 자처한 일이 없고 종교적 지도자로 활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오히려 종교를 거부, 배척하셨지요. 부처님 당신과 당신의 가르침이 종교화될까 봐 많은 신경을 쓰신 걸로 경에 나타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도라는 땅의 분위기가 굉장히 신앙적이기 때문에 그 사회 속에서 탄생한 불교가 그쪽 면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부처님이 법法, 담마Dhamma를 당신 가르침의 뼈대로 세우신 것도 신앙화를 방지하려는 의도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신앙적 태도를 강조하다 보면 사람이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인 쪽으로 경도되어 버리기 쉽지요. 어떤 사람을 두고 ‘그 사람 종교적이야!’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이성적,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보다는 추상적이며 증명되지 않는 신이나 신성을 좇아 경도되어 있다는 뜻이 되니까요. 그래서 부처님은 경도됨이 없이 중도中道를 견지하는 건전한 인간의 자세를 ‘지혜paññā’에서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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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2
지혜는 이성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걸 좀 더 살펴봅시다. 부처님은 인과因果의 연결 고리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십니다. ‘지혜가 중요하다.’ 하시고 그러면 지혜의 인因은 무엇인가 하고 풀어나가시지요. 그 인과의 고리를 ‘연기緣起’라 하고 연기의 맥락을 설하신 대표적인 체계가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십이연기에서 제일 앞에 무명無明이 나옵니다. 무명은 명明이 없음, 명이 결여됨이고, 바로 이 명의 결여가 모든 고苦의 시작이요, 모든 고의 근본 원인입니다. 따라서 고와 고의 원인을 강조를 하실 때에는 그만큼 명, 그리고 명의 근원인 지혜를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불교 교리를 자세히 보면 우리 마음에 있는 이성적 요소와 감성적 요소의 차이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가 어떻게 나올 수 있고 어떻게 증장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도 이 두 요소를 중심으로 풀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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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3
불교 전통에서는 이 문제를 심‧의‧식心意識의 삼분법을 통해 보다 심도 있게 파고듭니다. 식識은 십이연기에서 보듯이 인간 존재 및 윤회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요소입니다. 심心은 광범위하게 심‧의‧식 모두를 아우르는 넓은 뜻도 있고, 탐‧진‧치 삼독과 연결되는 중생살이의 근간을 이루기도 하고, 또 계‧정‧혜 삼학을 계‧심‧혜 삼학이라고도 하듯이 향상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심은 그렇게 다양한 뜻을 지닙니다. 이에 반해 의意는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의 제 육근으로서 처음부터 오로지 법을 대상으로 하는 외길이기에 지혜‧해탈‧열반으로 연결되는 향상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식識, 윈냐아나viññāṇa를 영역할 경우 보통 컨셔스니스consciousness로 옮기고 이걸 다시 우리말로 옮길 때는 ‘의식’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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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4
우리도 그동안 BPS 책들을 번역하면서 의식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지요. 하지만 윈냐아나를 ‘의식’이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다소 문제가 따릅니다. 경에 보면 의意는 마노mano이고 식識은 윈냐아나viññāṇa로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 ‘의’는 식을 번역하면서 ‘의식’이라고 하는 경우처럼 한낱 수식어처럼 쓰일 용어가 아니고 그 자체로 불교 교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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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5
부처님은 이 의意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십니다. 지금까지 법회에서 ‘의’의 중요성을 언급한 일이 많았으므로 여기에서는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마노mano, 의는 육내처六內處에선 의처意處가 되고 육근六根에선 의근意根이 되며, 이 의근manoindriya을 잘 계발하면 지혜가 열리게 되므로, 의는 지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거기에 반해 식의 경우, 지혜를 도울 수도 있지만 그 분별하는 기능은 지혜의 직관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경에서도 빤야는 어떻게든 발전 계발되어야 할 권장 대상이고 이에 반해 윈냐아나는 탈피해야 하고 확인해야 할 대상라고 분명하게 강조되고 있으니까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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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6
그러면 의근意根을 발전시켜서 지혜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물론 그 길은 팔정도입니다. 지혜가 계발되려면 팔정도 중에서도 특히 바른 마음챙김[正念], 사띠sati를 닦아야 합니다. 사띠를 닦아 의, 마노를 지킴으로써 법을 지키게 되고 법을 지킴으로써 지혜를 계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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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7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신앙적 태도부터 지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경로로건 종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거나 일단 뭔가 하나를 믿게 되고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합리적이고 넓은 사유 자체가 봉쇄되어 버립니다.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자신이 믿고 있는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쪽에 치우치게 되어 버리지요. 이것을 믿어서 옳은가 아닌가? 괜찮을까 안 되는 걸까? 잘 하는 걸까 잘 못하는 걸까? 하는 식으로 치우치게 되지요. 그리 되어 버리면 일체 사물의 본질을 따지고 그걸 더 캐내고 지혜를 계발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립니다. 그리하여 점점 맹목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맹목성盲目性이야말로 불교에서 가장 기피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유하되 맹목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겁니다. 맹목성은 바로 감은 눈인데, 그런 감은 눈으로 무슨 지혜의 문이 열립니까. 눈 뜬 장님이 될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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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5.2.8
우리는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어떻게 해서든 눈을 또렷하게 뜨고 지혜를 자꾸만 계발해야 합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부처님 법을 알면 그것이 지혜가 되지요. 지혜가 따로 있나요. 부처님 법을 아는 게 지혜입니다. 사띠는 지혜를 닦는 첩경이고 바른 길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띠, 바른 마음챙김은 팔정도의 나머지 일곱 요소가 구족된 사람이라도 사띠가 빠지면 지혜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띠가 갖추어지면 팔정도는 저절로 구족되어서 마침내 진리가 진리답게 확립됩니다. 우리는 부처님 법과 법의 체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써서 법의 혜택을 누리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익을 누리는 것이지요. 이익이라는 말이 속된 말 같지만 이익처럼 좋은 게 없지요. 금전적 이익이 아닙니다. 지혜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행복을 더 돋우어 주는 것이 진정한 이익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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