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고苦
Paragraph 14.6.1
21세기의 고苦
불교가 그러한 너그러움 속에서 시간을 대하는 것과 서양의 종말론적 위기감 속에서 시간을 대하는 것과의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불행히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서양 기독교의 시간관입니다. 오늘날 그 시간관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온 지구촌을 뒤덮고 있고, 그 영향을 받는 과학기술도 ‘종말’의 시간을 점점 앞당길 뿐이지요. 여기에 21세기의 ‘세기고世紀苦’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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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2
서양이 퍼뜨린 이 직선적 시간관에서 비롯된 병을 치유하고 건강을 되찾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합니다. 현대인들이 정말 성급하게 구는 것도 그 병에 감염되어 그런 것이지요. 그 병이 우리로 하여금 느긋함을 도저히 누릴 수 없도록 경제적, 사회적 체제로 옭아매어옵니다. 꼼짝 못합니다. 이것이 21세기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고苦의 특수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라는 성스러운 진리[苦聖諦]’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겁니다. 이 시대의 고를 빚어낸 서양의 시간관을 잠시라도 내려놓은 다음이라야 비로소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의 의미를 천착할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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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3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는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고인데, 생·노·병·사 등 그런 보편적인 고가 시대적, 지역적 제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변주로 드러납니다. 오늘날을 특징짓는 고는 서구화의 과정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시간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문화에서 발생하는 고인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뭔지, 진리가 뭔지는 까마득히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 대신 물질주의니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 투성이의 시대, 범람하는 사상들로 뒤덮인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유물론, 유심론 참 얼마나 극단적입니까. 무지無知가 떨어대는 너스레가 쓰레기처럼 쌓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고생苦生살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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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4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인들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레닌 동상이 세워져서 찬양받다가 세월이 바뀌면서 성난 군중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땅에 질질 끌려 다녔지요. ‘주의’라 이름 붙여진 것 치고 오래 가는 것 있습디까? 지금 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자본주의도 얼마나 가겠어요? 지구촌이 좁아지고 인간들이 그 위에서 숨도 못 쉬게 되고 석유가 고갈되고 물도 부족하면, 자본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소비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지탱된다고 하는데, 만일 나중에 소비할 자원도 고갈되고, 지구온난화, 사막화가 더 진행되면 자본주의인들 어떻게 유지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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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5
이런 유의 ‘세기고世紀苦’의 뿌리는 서양의 시간관에 닿아있고, 바로 거기서 오늘날의 제반 문제가 연원한다는 것입니다. 즉 현 인류가 체계적, 제도적으로 창궐시키고 있는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결국 이 시대의 시간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온갖 종교와 철학이 나와도 그것들이 이런 서양적 시간관 위에 서 있는 한 도움이 안 됩니다. 정말 비극적이지 않습니까? 그리스 서사시가 비극이고, 셰익스피어의 사대 비극이 비극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인류가 집단적으로 자멸自滅하고 있는 이 모습에 비하면, 그건 너무 한가하고 편안한 이야기들입니다. 그야말로 옛날 옛적 이야기들이지요.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이 진짜 대大 비극이 어디서 시작되었느냐 그 연원을 찾아보면 서양의 시간관에 그 맥이 가닿으니 실로 뜻밖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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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6
시간관이라고 하니까 철학적 고담준론高談峻論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누이 언급했듯이 이것은 우리의 존립에 직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현실 사안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당장 결단해야 할 최대의 과제는 시간관, 즉 ‘시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일 것입니다. 서양의 직선적 시간관이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들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직선적 발전사관發展史觀 때문에 다른 생명도 죽이고, 자기도 죽을 가능성 앞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론 인류의 존재 목적이 생존 그 자체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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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7
인간은 향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만이 불법佛法을 만나서 향상할 수 있는 능력, 즉 의意mano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류는 소행이 아무리 어리석을지라도 역시 살리고 볼 일이라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이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깨어난 사람, 눈뜬 사람, 사람다운 사람, 공양 받아 마땅하고 만중생의 복전福田이 될 아라한[應供: 밥값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인간이 향상할 수 있다면 진정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인류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다시 말해 인간만이 이 우주에서 해탈·열반이라는 진리를 구현할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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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6.8
어차피 우주는 성주괴공하니까 인류도 언젠가는 현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요. 그런데 우주의 성주괴공이란, 인간이라는 모순덩어리가 나와서 그 모순을 고해苦海로 삼아 그 속에서 갈등, 고뇌하는 가운데 해탈·열반을 이루어내는 매우 역설적인 구조를 지탱해 가는 순환 과정인 것입니다. 그 역설적 구조가 바로 사바세계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처가 나오고 아라한이 나오기에 우주 존립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아라한이라는 졸업생이 배출되는 한 우주라는 학교는 존립할 의미가 있고, 우주가 존재하면 지구라는 졸업반도 있어야 되겠지요. 그리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이 아라한을 내는 교과서 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이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아라한을 배출하는 그 법, 원래의 그 신통방통한 역할을 다하는 불법을 잘 살려내고 유지해서 후배, 후손들에게도 넘겨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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