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시간관과 고苦
Paragraph 14.4.1
이 시대의 시간관과 고苦
문제는 이 시대가 당면한 고苦의 특성이 다름 아니라 온 세상이 서양 시간관에 지배되고 있는 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고유의 시간관을 가진 중국조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로 서양의 시간관은 유별납니다. 유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그 시간관은 종교뿐 아니라 과학에도 미쳤습니다. 서양 고전과학에서는 시간을 공간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사차원이라는 말도 쓰지요. 삼차원까지는 유클리드의 공간 개념 아닙니까. 점·선·높이로 해서 부피가 형성되는 삼차원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의 연장선에 시간을 갖다 놓았지요. 그래서 시공時空 또는 공시空時space and time라 합니다. 이때 시간은 공간과 같은 정도로 실체성을 띄게 되고 그래서 뉴턴은 ‘절대시간’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지요. 이처럼 시간을 공간의 연장선으로 대했으니, 직선적으로 시간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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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2
뉴턴만이 아닙니다. 진화론을 편 다윈 잘 아시지요? 다윈도 시간을 그런 식으로 봅니다. 무기물만 있던 곳에서 단백질 합성이 이뤄져서 생명체가 시작됐다는 겁니다. 진화론에서는 태초에 하느님이 있었다는 것만 빠졌지 시간 개념은 똑같이 유태의 시간관 그대로입니다. 어떤 물질적 과정에서 모든 존재의 시원을 찾고, 그렇게 생겨난 종자들이 가지를 쳐가며 일직선으로 진화를 한다고 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에 의해 시작되어 종말로 가고, 다윈은 무기물의 상태에서 생명이 시작되어 진화하며 ‘그 진화의 정점에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관은 같은데 진화론에서는 하느님만 뺀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 교육계에서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를 놓고 심각한 균열이 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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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3
사실 진화론은 ‘인간’을 설명하는 데는 대단히 어설픕니다. 진화론에서의 인간은 겨우 ‘털 빠진 원숭이’에 불과합니다. 《털 없는 원숭이》라는 서양 책이 있듯이 과연 인간을 ‘털 빠진 원숭이’로 보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1 진화론이 과학적인 자세로 창조론을 거부했다고 해서 할 일 다 한 것일까요? 그러고도 지성이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역시 서양식 시간관의 문제가 있습니다. 서양에서 인간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떠난 제삼의 인간관에 대한 논의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서양식 시간관의 심각한 한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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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4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은 긴장해야 하는 대상이고, 언제 파국을 불러들일지 모르는 불안하고 두려운 대상입니다. 또한 사후死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준비가 없다 보니 시간 자체가 곧 존재의 불안인 것입니다. 서양철학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관념적 대상이 아니라 처절할 정도로 불안과 연결됩니다. 키에르케고르 같은 사람은 서양 철학사에서도 빛나는 종교철학자인데, 그렇게 깊고 절망적인 불안에서 고뇌를 시작한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그의 의식 밑바닥에 유태적 시간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합니다. 그러고 보니 불교의 ‘고관苦觀’ 중에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각납니다. 그 중의 뇌惱는 고뇌라고 할 때의 뇌로서 빠알리어 우빠아야아사upāyāsa의 한역漢譯이며 절망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역英譯에서는 이를 가장 강도 높은 절망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despair, desperation)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관으로 인하여 서양과 불교가 고를 대하는 자세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로 보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어떠한 ‘고’일지라도 절망 상태로 여기지 않고 윤회의 분상分上에서 향상의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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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5
그러한 서양의 시간관이 오늘날 인류를 지배하고 있으니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양의 뿌리 깊은 불안이 온 지구촌을 에워싸고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습니다. 서구식 시간 개념이 온 세상에 퍼지면서 사물을 보는 눈, 사태를 보는 눈을 일괄적으로 도배해버렸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하도 노출되다 보니 어느덧 그런 시간관과 존재에 대한 불안에 깊이 감염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인류가 겪는 고苦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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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6
전에는 사람들이 존재 상태에 집착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유표有表한 고苦를 겪게 되면 ‘아, 이놈의 고가 또 왔다, 이번 것은 참 대단히 심한 고다, 이걸 어떻게 면할까?’ 하는 차원에서 고민하고 걱정하고,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쓰는 식이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고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면서 다행이라고 혹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했지요. 말하자면 존재고存在苦를 일과성 고로 환원시키려 애쓰며 살아왔고, 그런 노력이 그런대로 통하는 시대를 살아온 겁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고의 근원은 존재의 지속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하니까 그 성질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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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7
시간에 대해 그렇게 긴장하니까 오늘날 인류에게 시간은 유한한 것이고,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고, 최대한 우려내야 할 것이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는 겁니다. 시간이 돈이고, 단위 시각 내에 어떻게 생산성을 더 제고시킬 것인가가 발전하는 사회의 척도가 되지요. 그러니까 현대인들이 항시 노이로제와 스트레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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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8
시간을 언젠가는 끝나게 될 유한한 것으로 보니까 큰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결국 끝장이 온 것인가? 지구촌의 종말은 아닌가? 과연 우리 존재는 이제 끝나고 마는가?’ 하는 우려로 곧장 증폭되어 버립니다. 이 고苦는 정말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문제가 전체적·구조적 파국과 연결되어 생각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자세로는 고는 속수무책이며 피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시간은 끝나게 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위에서 생각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서구식 시간관념에 따라 고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총체적 파국’이라는 관념의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려 버립니다. 얼마 전 새 밀레니엄을 맞았을 때 인류의 뇌리를 지배했던 것이 새 천년의 희망이었습니까? 대파국에 대한 불안·공포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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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4.9
보통 대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양문화의 전통일 뿐이지 보편한 것도 아니요, 더욱이 진리는 아닙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지구온난화의 예가 입증하고 있듯이 우리의 생각과 자세와 생활 방식이 환경과 상황을 만들고 끌어들이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환경 문제보다 더 끔찍한 고苦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요. 요컨대 ‘고’의 문제는 어떤 시간관을 가지는가, 어떤 시간관에 입각해 그 당면 상황을 보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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