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시간관
Paragraph 14.2.1
서양의 시간관
불교와 기독교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그중 핵심적인 것의 하나가 시간에 대한 태도입니다. 기독교는 시간을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일직선으로 주욱 나아가는 일회성의 것’1이라고 봅니다. 시간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지구상에 출현했던 여러 문화 중에서도 대단히 독특한 것이라 합니다. ‘시간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일직선의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이해한 것은 유별나게 유태 문화라는군요. 그리스 문화도 아니고 게르만 문화도 아니고 인도 문화도 아니고 중국 문화도 아니지요. 요즈음 우리는 흔히 그런 직선적 시간관이 당연히 보편적인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고 유태 문화 특유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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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2.2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 죽으니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게 시간이라고 개개인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화로서 시간에 대해 유태 문화처럼 그러한 개념 규정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예는 별로 없고, 유태에서 멀지않은 중동 땅에서 한때 번성했던 조로아스터교에서만이 다소 비슷한 견해가 발견된다고 하며,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에서는 지식인들이 윤회輪回에 대해서 생각하고 믿었다고 합니다.2 서양의 게르만 문화에서도 그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듯 윤회관은 서양에서도 문화의 주류로 계속 이어오지 못했다 뿐이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다만 유태 문화가 예외랍니다.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했으니까 하느님이 존재를 만들 때 시간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대파멸·종말이 오는데, 그때는 시간도 끝난다. 그때까지 시간은 일직선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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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2.3
이러한 독특한 시간 이해는 절대자 창조주가 전제되는 유태 문화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태인들의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직선적 시간관념은 기독교를 통해 서양에 전해지고, 마침내 인간의 삶에 대해 특정한 태도를 조성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간관이 지금 인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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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2.4
하느님이 인간을 포함해 삼라만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은 잘못된 행위를 해서, 즉 원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하지요. 이렇게 되니 인간의 삶은 시작부터가 대단히 비극적입니다. 역사가 원죄로 시작되는 판이니까요. 최초가 그렇게 끔찍하니 대단히 비장하다 할까 비극적이라 할까 그런 시각에서 시간을 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원죄의 결과는 결국 인류의 종국적 파멸로 이어집니다. 성경의 〈요한 묵시록〉에 있듯이 원죄로 시작하여 종말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종국적 파멸이란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전 지구적 파멸로, 모든 생명이 최후의 심판을 받아서 천당에 가는 사람은 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지복을 누리고, 지옥에 가는 사람은 거기서 영원한 고통을 겪는다는 게 그 끝입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기독교적 시간관념은 도대체 수용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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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2.5
다양한 사고가 전개됐던 그리스 문화에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말 한 마디 없어요. 그저 하데스Hades에 간다고 하고는 그 지하의 명계冥界에 떨어진 후에는 어찌 되는 건지 이야기가 불분명합니다. 예를 들면 오디세이가 명계를 찾아가지요. 거기서 과거에 함께 전쟁을 치렀던 영웅들을 만나는데 그냥 모두 하데스 중생이 되어 있었지요. 그리스 문화의 최대 약점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불분명한 채로 얼버무리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플라톤도 윤회 사상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매우 미약했고 그렇다고 직선적 시간관을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서양에 직선적 시간관이 소개된 것은 로마 시절에 기독교가 유입되면서부터이지요. 그로 인해 유태 문화의 시간관념을 이은 기독교 시간관이 형성되었고 그 시간관이 서양 문화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서양의 시간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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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2.6
기독교적 시간관이 서양 문화를 지배한 후로 서양 사람들에게 시간은 어찌 보면 대단히 경외로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시작도 두렵고 끝도 두려운 겁니다. 그렇게 ‘두려운 시작’에서 ‘두려운 끝’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 과정에 있는 현재도 두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니 언제나 두렵고 불안하지요. 이런 유형의 불안은 뿌리 깊은 스트레스 원源으로서 심층의 무의식에 깊이 잠복하지요. 좀체 표층 의식에 떠오르지 않다가 어떤 유발 요인이 작용하면 떠오를 텐데 경우에 따라선 급격히 절망감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클 것입니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에게는 막연하지만 쫓기는 듯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는 것, 끝없이 압박하는 그 어떤 것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안은 기독교적 시간관에서 오는 것입니다. 서양의 시간관이 얼마나 특이한가는 중국 사람들의 시간관념과 대비해 보아도 잘 드러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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