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이 다르면 고苦의 질도 다르다
Paragraph 14.1.1
시간관이 다르면 고苦의 질도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부처님이 ‘고苦’를 말씀하신 취지를 이해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부처님이 고에 대해 가장 체계적으로 하신 말씀은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DhammacakkappavattanaSutta〉1에 실려 있습니다. 〈초전법륜경〉은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하신 최초의 법문입니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불교의 핵심인 중도中道를 천명하시고,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는 고[苦聖諦]와, 고의 생겨남[集聖諦]과, 고의 해결[滅聖諦]과, 고를 해결하는 길[道聖諦]을 제시해주신 가르침입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굳이 고를 설하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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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2
부처님 당신에게는 고를 둘러싼 이 사성제가 너무나 명확한 진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열반涅槃을 몸으로 증득해서 누리고 또 보시니까 열반에 이르는 이 길, 즉 사성제, 팔정도의 체계는 명백히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보시기에 이 중생들이 얼마나 딱하겠습니까. 열반은 생각도 못하고, 윤회輪回가 무엇인지, 고가 무엇인지, 그 의미도 모른 채 오로지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헤어날 줄 모르니까 측은지심을 발하신 겁니다. 부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나는 고苦와 고의 멸[苦滅]을 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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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3
그리고 부처님은 ‘깨달은 사람은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시는데, 이 말씀은 윤회를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윤회의 세계가 다름 아닌 고해苦海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열반을 모르는 중생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서, ‘윤회의 고에서 벗어나라. 그러려면 윤회고의 원인인 갈애渴愛를 없애라.’고 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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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4
갈애는 빠알리어Pāli로 딴하taṇhā라고 하는데, 이는 존재에 대한 욕망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존재를 지속하려는 강력한 욕망, 이걸 갈애라 합니다. 욕망이라고 하면 식욕·수면욕·성욕·명예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 말씀하신 갈애는 그런 일반적 욕망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서든 존속하고 싶다’는 존재욕存在慾을 말합니다. 그 욕망에 이끌려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어떤 존재든 가리지 않고 취하여 존속하게 되는 겁니다. 갈애에 묶여 해탈解脫·열반涅槃에 들지 못하고 삼계三界를 하염없이 윤회하며 헤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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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5
〈초전법륜경〉에서 부처님은 고苦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태어남이 고이다. 늙음이 고이다. 병이 고이다. 죽음이 고이다. 싫은 대상과 만나는 것이 고이다. 좋은 대상과 헤어지는 것이 고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고이다. 요컨대 오취온五取蘊이 고이다. Jāti pi dukkhā jarā pi dukkhā vyādhi pi dukkhā maraṇaṃ pi dukkhaṃ …,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 picchaṃ na labhati tam pi dukkhaṃ, saṃkhitena pañcupādānakkhandhā pi dukkh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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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6
인간을 구성하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쌓임인 온蘊들, 즉 색온·수온·상온·행온·식온이 오온이고, 오온에 대한 집착이 오취온인데, 부처님은 바로 이 ‘오취온이야말로 고’라고 고를 분명히 정의하십니다. 이 말씀은 ‘윤회하는 존재, 그 자체가 바로 고존苦存’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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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7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우리는 죽기 싫어서 아등바등 몸부림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존재들에게 부처님이 너희들은 왜 이 명명백백한 열반을 깨닫고자 엄두는 내지 않고 그 어두움 속에 갇힌 채 존재에 중독되어 사느냐고 하신 겁니다. 사실 중독입니다. 존재 양식과 존재의 경험에 중독되어서 그것이 고苦인 줄 모르고 헤어날 생각을 못 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은 윤회를 당연시하고, 혹시라도 윤회에서 탈락될까봐 두려워 기를 쓰고 있는 모양새이지요. 그게 안타깝고 가련해서 부처님이 법法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고를 가르치신 취지였습니다. 부처님이 ‘윤회가 고’라고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인도 사람들이 존재가 윤회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입니다.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다만 동물로 태어날 것인가, 지옥에 태어날 것인가, 천상에 태어날 것인가가 문제일 뿐이었지요. 그러니 부처님이 첫 법문부터 ‘윤회의 고’를 말씀하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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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8
부처님이 ‘윤회’와 ‘고’를 가르쳐주신 덕분에 우리는 도대체 왜 태어나고,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존재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을 제대로 찾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윤회가 바로 고苦’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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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9
그런데 오늘날에는 윤회의 뜻도 모를뿐더러 물론 윤회고輪回苦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윤회 자체를 믿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오취온이 고’라는 부처님 말씀이 우리 실생활 속에 스며들 만큼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21세기에는 고의 의미를 알기도 어렵고 고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기도 무척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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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4.1.10
현대인들이 윤회와 윤회의 고를 알기가 어렵게 된 연유가 무얼까요? 물론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간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윤회’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서양의 우주관, 그 중에서도 서양의 시간관時間觀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인류 문명을 끌어가고 있는 것은 서양 문화이고, 서양 사람들의 뇌리와 심정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기독교적 관점입니다. 따라서 서구 기독교의 시간관은 어떠하며, 그것이 현대 인류에게 어떻게 고苦를 안겨주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미상불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시간’에 대한 관념이 ‘고’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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