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의 사표
Paragraph 11.6.1
탐구의 사표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를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도 할 수 있는 모든 시도와 노력을 다 하셨고, 항상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추적하셨습니다. 경에 나오기를, ‘해보니 무익하더라.’ 참 대단한 말씀이지요. ‘해보니 무익하더라. 이건 아니더라.’ 당시 지구상에 있는 문화 중에 정법의 토양으로서 가장 비옥한 곳인 인도에 태어나서, 인도가 제공하는 모든 기존의 방법을 다 시도한 결과, ‘아니다’ 하는 결론을 내리셨다, 이겁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2
석가모니에게는 출가도 힘든 일이었겠지만, 출가보다 더 힘든 결단은 목욕하고 나와서 보리수 밑에 앉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단이었고 얼마나 큰 용기였는가 생각해 보세요. 그때까지 그분과 보조를 같이했던 다섯 비구가 모두 등을 돌리고 떠났습니다. 이거 예삿일 아닙니다. 말하자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나에 대한 인정認定,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옳은 길이라고 인정해 주던 그 인정이 떠나간 겁니다. 이제 완전한 외로움 속에 고독자가 된 거지요. 물리적으로 혼자 있어서 고독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버림받은 고독입니다. 최후까지 함께 공부하던 도반들이 모두 떠나 버렸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3
게다가 ‘저 사람은 수행자로서 타락했다’ 하고 떠나버렸습니다.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고독입니까. 그리고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지금까지 시도해 본 방법은 모두 ‘아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법이 어디에 있을지? 과연 그게 가능할지? 얼마나 막연합니까. 그 막연한 길을, 그 외로움 속에서 홀로 걷는 결단은 출가보다 더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진지하게 모든 것을 다 걸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부처님은 해탈을 이루십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4
경에 이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요새처럼 석가모니라는 한 인간의 이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록한 것이 아니지요. 그저 부처님이 누구를 가르치다 보니 ‘나도 이런 때가 있었네’ 하고 관계되는 부분만 말씀하셨기 때문에 체계적 서술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미루어 보건대 부처님이 인간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생명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새도 생명을 버리는 일은 많이 보잖아요. 기름도 끼얹고 불도 붙입니다. 뭔가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라고 하면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5
그렇지만 아무런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방법도 없고 길도 없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에도 별로 사례가 많지 않을 거예요. 부처님이 그러한 길을 가신 겁니다. 정말 그분은 탐구자로서 우리의 영원한 사표師表입니다. 영원한 사표. 그래서 마침내는 깨달으셨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6
그러나 부처님이 절대로 우연히 깨닫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태까지 의지하던 방법을 다 버리고 보리수 밑에 턱 앉았을 때, 어찌 보면 부처님은 절망에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신 거지요. 새로 시작하는데, 어릴 적 왕자로 부왕과 함께 농사의 축제 철에 참여했을 때 경험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가 버립니다. 경에서는 ‘해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지요. 나무 밑에 앉아서 깊은 정定에 들어가니까, 어린 부처님을 뙤약볕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해가 움직이지 않고 나무 그늘로 보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경험했던 바로 그 방법이 뇌리에 떠오르면서 ‘아, 그때의 그것이 어쩌면 옳은 길인지 몰라’ 하고는 그 길로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합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7
이게 뭘 의미하느냐. 부처님은 원력을 세우고 무수한 생애를 닦고 또 닦아왔습니다. 《자따까 Jātaka(本生譚)》 같은 경에 보면 부처님이 과거 생에서 육도를 윤회하며 때로는 원숭이도 되고 때로는 사람도 되고 천신도 되면서 닦아 오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것은 당시의 인도가 제공했던 전통적 방법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기존의 방법이 아니라 부처님 숙세의 원력이 사무치고 사무쳐서 익었던 방법이라는 암시입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쳤던 방법도 아니고 누구에 의해서 발견된 적이 없는 방법이므로 부처님이 과거 오랜 생 동안 추구했던 간절한 구도심이 절로 익어서 마침내 터져 나온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8
어릴 적에 부처님이 나무 밑에 앉았다는 것 자체가 숙세의 업을 가리킵니다. 금생의 이성적 판단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거든요. 과거세에 닦고 닦으면서 탐구한 숙세의 업이 익고 익어서 너무나 간절하고 절실한 것이 되었고, 마침내 금생에 성불할 기연奇緣으로 그렇게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 자기도 모르게 깊은 정定에 들었고, 출가 후 모든 것에 절망했을 때 바로 그때 경험이 생각난 겁니다. 말하자면 ‘믿을 건 현세의 어떤 전통도, 어떤 스승도, 어떤 가치관도 아니다. 오히려 내 숙세에 추구한 정진 자세다. 그 노력, 그 열성, 그 구도심, 바로 그것이 답이다’ 하는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

Paragraph 11.6.9
우리가 부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가르침에 감사하면서도 물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 그 원천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가 가르친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뭘까? 그분의 간절한 구도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덮어놓고 ‘부처님이니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 그 원천은 숙세의 간절한 구도심이었습니다.
  • 토론 Discussion

  1. (name)(text)
  2. (name)(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