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 어려운 기회
Paragraph 11.10.1
만나기 어려운 기회
부처님의 생애는 당신의 해탈·열반뿐만 아니라 중생 모두가 이 절망의 암흑에서 벗어나 해탈·열반을 향해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깨달으신 후 45년을 길가에서 노숙하면서 법을 전해주신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 모두가 그 길을 걸어라. 확신을 가지고 걸어라. 그러면 반드시 성불한다. 시간에 구애되지 말라. 금생에 해탈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전생을 포함해 여태까지 얼마나 기초 작업을 해왔느냐에 달린 문제다. 과거에 등한히 했으면 지금이라도 시작하라. 윤회의 마당에서는 금생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든지 해야 한다. 하라! 이 법 만나기가 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 難遭遇다.’ 숱한 윤회전생에서도 부처님 법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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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2
여러분이 불교가 없는 나라에 태어났다면 이 법을 어디서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이 지구상에 부처님 법이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됩니까?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또 부처님 법이 있는 나라에 태어났다고 해서 팔정도 다 듣습니까? 삼십 년, 사십 년을 절에 다녀도 팔정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또 팔정도 들었다고 다 압니까? 팔정도를 지식으로 머릿속에 아무리 넣고 있으면 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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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3
이렇게 법을 만나기 어려운 겁니다. 또 이 마음 열고 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고요. ‘백천만겁 난조우’입니다. 듣고 매일 만지면서도 모르고 지나간 것은 만난 게 아닙니다. 불법을 입으로 외우고, 부처님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고, 절에 다니면서 공양을 올리고, 보시행을 아무리 해도 팔정도를 모르고 팔정도를 통해 우리가 해탈해야 한다는 취지를 모르면 만난 게 아닙니다. 그저 금생에 조금 더 편하게 사는 데 부처님 힘 좀 빌리는 정도의 원이나 세우고 살면 그것은 부처님 법 만난 게 아니지요. 그건 무당에게 가서 나무 밑에서 빌고 했던 그 습관을 부처님 앞에서 하는 것으로 바꿨을 뿐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부처님 법 만났다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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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4
얼마나 어려운가, 이 법 만나기가! 그러니 금생에야 만났다고 후회할 것도 없지요. 백천만 겁을 돌고 돌다가 금생에 만났으면 그것만 해도 너무 감지덕지지요. 거기다 대고 또 불평할 겁니까? 우리가 부처님을 만났다면 그 가르침의 진수를 이해해야 하고, 또 마음을 열어서 깊이 음미해야 합니다. 마음은 딱 닫아놓고 내 고집은 그대로인 채로 ‘부처님 법, 이게 맞나 틀렸나’ 하고 조금 건드려보다가 ‘이거 아니다’ 하고 튕기는 짓 하고 있으면 부처님 법 만난 게 아니고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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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5
그리하여 그 법 만남을 기리고 감사해야겠습니다. 그렇게 감사한다면 ‘이제는 정말 부처님 법에 따라서 팔정도에 따라서 금생을 한번 살아 보겠다’ 하는 원력을 세워야겠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든 일을 부처님이 주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가피로, 나를 성불시키기 위한 더없이 완벽한 조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향상의 기회로 활용해 나가야겠습니다. 그렇게 산다면 내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금생이 얼마나 보람 있겠습니까. 내가 정말 마음 깊이 부처님과 그 법을 받아들였다면, 그 인연은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고 다음 생에도 절대로 안 놓칩니다, 안 놓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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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6
이렇게 해서 팔정도를 걷게 되고, 걷다 보면 마침내는 바른 견해[正見]가 서고, 바른 견해가 확립만 되면 일곱 생 내에 성불한다 했어요. 즉 예류과豫流果입니다. 그래서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이 청정해지고, 그 힘으로 바른 사유[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를 더 닦아서 어느 정도 완성된 경지에 이르면 일래과一來果입니다. 이제 생을 한번만 더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서 그것이 완성되면 불환과不還果입니다. 즉 시시하게 이런 세계에 안 나타나고 저 정거천에 가서 끝냅니다. 그리고 팔정도 중에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이 완성되면 아라한과阿羅漢果입니다. 해탈‧열반입니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삶을 사셨던 그 목적을 내 안에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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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7
정말이지 우리 존재는 아무리 미천할지라도 해탈을 향해 향상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팔정도를 알고, 팔정도를 다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삼으면 해탈의 길로 나아갑니다. 해탈은 높고, 어딘가 따로 있고, 속세에 사는 우리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런 게 아닙니다. 누구나, 어떤 존재나, 어떤 상황에 있거나, 팔정도를 만나는 사람은 해탈의 길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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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8
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지요. 윤회하는 시간, 그거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몇 생이 걸리든지 간에 정법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느냐가 문제지요. 정법을 만나기만 하면 해탈은 시간문제입니다. 따라서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은 정법을 만나서 팔정도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만 금생에 해내도록 하십시오. 그 이상 다른 욕심 내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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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9
해탈에 대한 욕심도 부리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의 의식으로는 부처님 참소식을 조금도 상상하지 못해요. 십이연기로 설명하자면 식識이 있으면 명색名色이 있는데, 그 식으로는 명색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름과 형상에 매여서 헤매는데, 그걸 넘어서는 소식을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억지로 상상하려 들면 오히려 대단히 큰 잘못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상상력 가지고 어떻게 감히 명색을 넘어선 세계에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상상했다 하면 기껏해야 유물론이나 나오고 유심론이나 나오고 하나님 나라나 나오지요. 그러니 상상하려 들지 말고 부처님 설하신 대로 팔정도에 입각해서 나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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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0
팔정도에 마음챙김[正念]이 있는데 그 마음챙김의 방법이 변천된 것 중에 참선도 있고 묵조선도 있고 염불선도 있고 기도도 있고 별게 다 있어요. 그러나 팔정도의 맥락을 잊어버리면 그게 다 사邪가 된다는 겁니다. 관법을 해도 팔정도를 잊어버리고 하면 사가 됩니다. 안 그러면 팔정도가 왜 유일한 길이겠습니까. 관법도 있고 참선도 있고 기도도 있지만, 그 어느 하나에 집착해서 전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팔정도를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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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1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말, 우리의 삶을 끝없이 정화시켜서, 정화된 만큼 자기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정진을 끝없이 할 따름입니다. 그 노력으로 더 높은 이상 세계로 나아가서 마침내 팔정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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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2
부처님의 생애는 바로 해탈이 있고, 해탈로 가는 길이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눈에 안 보이니까 ‘해탈한 사람 어디 있어’ 하며 별소리 다 하는데, 지금도 해탈하는 사람 많이 있고 또 여러분도 반드시 해탈합니다. 아무도 해탈을 못 하게 되는 때가 인류의 멸망입니다. 해탈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인류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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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3
그러나 해탈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되면 지구의 존재 가치가 없게 됩니다. 끝난 것이니 용도 폐기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인류라는 이 생존양식은 필요 없게 되는 겁니다. 왜? 인간이란 향상을 목표로 하는데 향상이 중단되면 더 이상 인류라는 존재가 필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육도 중의 인간계가 사라지는데 사라져도 없어지는 건 아니고 바뀌는 겁니다. 장場을 달리하는 거지요. 지구가 파멸해도 물질만 파멸하고 식은 파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은 또 새로운 장에 태어나서 내내 해탈을 향해서 정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인간 존재입니다.(《장부》 27경 악간냐 숫따Aggañña Sutta, 칠식주 이처七識住二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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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4
해탈을 향해 가든 해탈의 반대 방향으로 가든지 무명이 있는 한, 행行은 끝이 없어요. 깨닫기 전에는 행을 하는 겁니다. 어떤 행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해탈을 향한 행을 할 때에는 끝없이 향상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해탈·열반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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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graph 11.10.15
여러분이 부처님 생애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법을 만난 그 인연이 성숙하길 빕니다. 그래서 우리 성불합시다. 해탈·열반합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해탈시킵시다. 정법을 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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